음력 5월 10일. 언젠가 십몇 해 전 이날 나는 이렇게 따스한 날 세상에 태어났을 것이다. 비가 왔다느니 날이 궂었다느니 하는 말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따스한 봄날이었을 것이다.
소띠가 이렇게 일 많은 봄에 태어나 울 손녀는 일복이 터졌다고 늘 입에 달고 사시는데 오늘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도 싶다. 날이 정말 따스하네. 농촌에 사는 모든 생명이 다 바쁠 때가 이때가 아닌가. 하다못해 집 지키는 개조차도 이래저래 바쁜 달이니까.
이렇게 비도 오지 않고 날도 궂은날이 아니면 모내기하기엔 딱 좋은 날이다. 아니다.
아주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좀 궂어도 비만 오지 않는다면 모내기하기엔 오히려 좋을 것이다. 덜 더울 테니까. 좀 덜 더우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하는데 우리 노인네들은 계속 내 눈치를 보느라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한다. 바쁘다는 것이 이유이기는 했으나 분명했다. 날 피하고 있다. 상할매는 얼른 주방으로 가시고 할매를 보면 또 허둥지둥 뭘 찾는 척한다. 할아버지를 보니 나 논에 가네 하면서 후딱 도망 아닌 도망을 가신다. 배고프냐? 뭐라도 주랴? 물어도 몇 번을 묻고 쳐다보기만 해도 왜 뭐 필요하냐 하고 챙겨도 몇 번을 챙겼을 양반들이 시선 부딪히기를 무서워하니 말이다. 것도 나의 생일에. 하! 이 양반들이 정말 해보겠다는 거야 뭐야?
“왜? 그렇게 미안하믄 모내기를 다른 날로 미루면 되겠네. 뭘 그리 눈치를 보믄서 피하냐고. 기분 나쁘게. 누가 보믄 땡깡 부리는 철없는 딸인 줄 알겠네.
기분 안 나쁘다니까. 한창 바쁠 때 태어난 것도 내 복이라며. 이해한다고~~
왜 그래 진짜? 서럽게. 집 나간다. 나가서 낼 들어온다?! 모내기도 끝나고 생일도 지나가고 내일이 일요일이니까 낼 오믄 되겠네. 그러길 바라는 거야? 나갈까?”
“미안한게 안그냐, 느 할애비 할매가.”
먹혔다. 상할매는 슬쩍 말을 붙인다.
끝났다. 또 눈치만 봐봐라. 헤헤~ 울 노인네들 결국은 내 손바닥인걸. 몸이 좀 부실한 내가 밖에서 자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불안한 것이다. 그런 내가 집을 나간다고, 안 들어온다고 하면 웬만하면 넘어갔다. 나의 협박 아닌 협박을 우리 노인네들만 모르는 사실일 뿐.
오늘은 바쁜 날이다. 아마 추수 전까진 제일 바쁜 날일 것이다. 좋았다. 아니 행복하기까지 했다. 모내기는 꼭 해보고 싶은 농사일 중 하나였다. 워낙 농사일은 못 하게 하셔서 해볼 수 있는 일이 드물었다. 행운인지 오늘은 쉬는 날인데다 생일이다. 땡깡은 이럴 때 놓는 것이다. 앗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