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Story 03화

추억의 버스 안내양

인간이 받아들인 기계들에 밀려난 인간의 슬픔

by 영하

“내려요, 저희 여기서 내려야 해요. 아저씨 비켜주세요, 저희 내릴 거예요.”

오빠는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질렀고 주변 분들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그때 늘 그렇듯

“앞에 계신 분들 내렸다 타세요. 아이들 내리고 다시 타세요. 에이, 좀 비켜주시고!”

그렇다고 해도 누구 하나 화내거나 소리 지르는 사람 없이 안내양 지시에 따라 내렸다. 사람들이 내려 겨우 숨을 쉴듯한 공간들이 생기면 몸이 움직이기가 편해졌다. 오빠는 잡고 있던 내 손을 다잡고, 후딱 앞으로 나아가 언니가 내민 손을 잡았다. 오빠가 내리고 있으면 언니는 가뿐하게 나를 안아서 버스에서 내려놓았다. 둘이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언니는 내려서 있던 사람들을 다시 태우며

“타세요~~자, 얼른 다시 타세요.”

하고 버스에 올라타 버스 옆 허리를 탕탕 때리면서

“오라이~~.”

한다. 안내양 언니는 정말 천하무적 로보트태권브이 같았다. 사람들이 많아 버스를 놓치는 적도 많았는데 그럴 때는 그 언니들의 괴력을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문 양옆 손잡이 같은 바를 잡고, 사람들을 온몸으로 밀어 넣는 모습이나, 그러고도 다 못 밀어 넣으면 그대로 밀어 넣던 몸으로 사람들을 지켜주는 문이 돼서는 ‘오라이~’ 하고 소리 질러 출발했다. 그러고 떠나는 버스를 볼 때마다 어린 나는 저 언니들은 정말 로봇 태권브이라고 했다. 오빠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내가 여덟 살에 학교를 입학해 다니던 그때는 버스에 안내양이 있었다. 아마도 지금 기억으론 초등학교 내내 있었지 싶다. 중학교는 걸어 다녀서 기억이 없어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즈음 사라졌지 싶다. 하여간 안내양 언니가 있으므로 어렸던 시절 학교 다니기가 그나마 무섭지 않았다. 모르고 헤맬 수 있는 두려움의 시간을, 자의든 아니든 간에 채워주었으므로. 어린 초등학생이 버스 타고 다니기가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았던 것도 같다. 다음은 어디라고 알려주고, 내리실 분~, 내리실 분 안 계세요? 그런 다음 차가 서면 내려서 어디 간다고 소리 지르고 없어도, 손님이 타도 버스 옆구리 때리면서 ‘오라이~’ 하고 외쳤다.

나와 오빠는 이사하면서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래서 내가 다니던 그 시절의 국민학교 1학년부터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사람들 복잡 대는 전대사거리에서 29번 버스를 타서 충장로 아래까지 가야 했는데, 이 먼 길을 너무 어린 나와 오빠는 어른들 허리 아래서 갇혀가기 일쑤였다. 답답했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조금 여유가 있는 어른들의 다리 틈이긴 했으나, 그사이에 끼여 가는 형국이었으니 왜 답답하지 않았겠는가. 밖을 볼 수 없던 오빠는 정류장을 세면서 간다고 했다. 나중에 혼자서라도 그렇게 하라고. 그렇게 어린 오누이가 손을 꼭 잡고 버스를 타려고 서 있으면, 그 태권브이 언니는 얼른 나를 안아 올려 주었고 내릴 때도 안아 내려 주었다. 이뻐서가 아니라 더딘 아이의 발걸음이 답답해서였음은 나중에 알았다. 그렇지만 한겨울에도 많은 사람 틈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내리는 나를 안아 내리며, 옷을 여며주고 모자를 올려 주던 손길은 답답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탄 버스는 온통 사람으로 가득 채워 한 발짝 떼기가 힘들었다. 내 의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떠밀려서 안쪽까지 들어가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서 내릴 때는 오빠가 있는 힘을 다해 우리 내린다고 소리를 질렀다. 겨우 내려서 가는 버스를 보면, 증조할머니가 기르는 콩나물시루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시루의 콩나물을 쏙쏙 뽑아서 자리 만들어, 잘 다듬고 움직여서 빡빡했던 콩나물들을 여유 있게 자리를 잡아주듯이, 복작복작한 사람들의 틈새를 내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여유를 내보는 것이 안내양 언니고.






몇 년을 그 29번 버스를 타고 다녔다. 낯도 익힌 언니들도 여럿이었다. 그래서 집에 갈 때는 언니들과 수다를 떨면서 가기도 했다. 여전히 본인 일을 하면서 말이다. 좋지 않은 일로 울면서 버스를 타는 날은, 종점까지 데리고 갔다 다시 돌아오면서 내려 주었다. 함께 떠는 수다에 진정이 됐고, 사람이 별로 없는 버스를 타고 한 바퀴 휘 하니 도는 그 시간이 위로되기도 했다. 등교할 때의 복잡함만 뺀다면 한낮의 버스는 한가했다. 좋은 시간이었다. 소위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나눌 수 있는 정이 있는 시간.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알아가면서, 부대끼면서 아끼고 정을 나누던 아름다운 시간. 지치고 힘들 때 돌아보면 그런 아름다운 시간도 있었지 하면서 힘이 되어 주는, 인생의 조각들을 모아놓으면 지금의 내가 되는 것을 지금은 안다. 조각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나였음을. 그리고 낭만의 시간이었음을.






지금은 지하철이 생겨 큰 도시엔 한, 두어선 정도는 운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버스의 승객들을 나누어 태워 조금은 나을 것이고, 또 자가가 한 가구당 한두 대는 있다 보니, 그 옛날 그 모습은 보기 힘들지만, 가끔은 이렇게 그때의 안내양 언니들이 그립다.

여긴 어디고 다음은 어디니 알고 있어라. 내릴 때 조심해라. 문 닫는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인지했을 것으로 알고, 내 마음대로 한다는, 지하철과 버스의 친절을 가장한, 들려주기에만 능숙한 기계의 목소리. 듣는 것은 차단한 채, 제 목소리만 내고는 귀를 닫아 버린다. 모르는 것은 너희들이 알아서 찾아야 한다. 더 이상의 안내는 없다.

제 말만 하고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문 닫아 버린다. 급하게 타려는 사람이 문 사이에 끼는 일도 있고, 늦게 내리던 사람이 문에 치는 일도 있다. 그러면 사람이 다치지 않았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오류가 생겼다며, 더 성을 내는 시대가 지금이다. 오히려 다쳐서 부끄러운 것은 사람의 몫이고, 기계는 조심하지 않냐며 당당하다. 사람이 기계에 치이고 있다. 더 이상 사람을 위해서 내렸다 타라는 태권브이 언니는 없는 것이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낯선 로봇 태권브이만 남아 있는 것이다.

특히, 정 대가리 하나 없는 목소리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지시하는 내비게이션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어린 시절 추억은 더욱 소스라쳐온다.

이 버스 어디 가느냐고 묻는 것은 허다하게 보이는 풍경이었으며, 가는 방법을 몰라 물어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몇 번 버스 타면 갈 거라 가르쳐주던.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더 정겹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그 로보트태권브이 언니가 급작스럽게 그리워서. 많은 물질이 만능을 이루는 이 세대들은, 이 그리움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는 가다가도 길을 물었고, 운전하다가도 차를 세우고, 가는 이를 불러 길을 물었다. 누구나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웃으면서 손까지 흔들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사람들에게 물을 일이 없을 거라는 이도 있고, 혹시 몰라 묻느라 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른다고 손사래부터 치고 가버리는 이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대놓고 내비게이션 없어요? 하고 신경질을 내는 이도 있다. 겨우겨우 가르쳐 주면서도, 얼굴에는 온통 귀찮다는 짜증이 묻어 있다. 감사 인사고 뭐고 머쓱해진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주의가 많아져서 그런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개인주의는 ‘타인 역시 나와 동등한 개인이므로 존중해야 한다.’가 기본이다. 배제하고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독립적인 자주권을 인정하면서 팀플레이 하자는 것이지, 밀어내면서 귀찮아하고, 나를 중시하는 것은 결코 개인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모습을 가장한 세상이, 각박해지고 야박해지고 있음이다.

아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는 있지만 세상을 탓할 일은 아니다. 결국 인간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말하지만, 그 세상이 험악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변한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 사이의 우열을 만들고, 사람 간의 등차를 두고, 계급을 만들어 차별하고,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를 차단하면서 정은 만들어지지 않으며, 믿음은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이 사이에서 이기주의와 이상한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외로웠을 것이다. 지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은 외로움에 고개 숙이기 싫었고, 그래서 분노로 표출한다. 서로를 찾고 의지하는 대신 인간을 대체할 기계를 만들고, 기계에 의지하고.

그러나 기계는 인간처럼 따뜻한 피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외롭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외로움은 슬픔을 만들고, 슬픔은 다시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범죄만을 남겨 두고, 거리를 멀어지게 하지는 않았을까? 묻지마 폭행이나 범죄 등이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더 험악해지는 것은 아닐까? 기계와의 대화에 집중하다 보니 인간과의 대화는 사라지고, 대화가 없다 보니 이해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이해관계가 중요하지 않은가.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일단 부딪쳐 보고,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고 관철시키며, 나와 다른 의견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대화를 해야 한다. 안되면 밤을 새워 토론하더라도 필요한 시간일 것이다. 지지고 볶는 것처럼 보이나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있으며, 받아들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이 사라지면서 더욱더 이해관계의 형성은 사라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CCTV가 우리나라가 제일 많다고 한다. 좋은 면으로 보자면, 치안에 좋고 사고 예방에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면으로는 나의 사생활이 없다는 점도 있다.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문제는 아닐까? 서로를 챙기고 알아가지 않아도, 서로 기울이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문제는 기계가 해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가 있어 편한 점도 많다. 하지만 기계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이 부분들은 사람들이 서로 기울이면서 손을 내밀고, 잡아주어야 해결이 되는 부분이다. CCTV에도 사각지대는 있으며, 독고사는 늘어가고 있고, 어려운 이웃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한 달을 사는 것들이 그런 것이다. 함께 늘 챙기고 들여다본다면 이런 일들이 있을까? 오지랖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그 수위가 이제는 너무 높다. 오지랖은 사람의 본능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안내양이 그리운 것은 모르는 누군가에게 기울이고, 서로를 챙기면서, 함께 살아가던 시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이사를 와도 떡 하나 돌리면서 얼굴 익히고, 오지랖으로 서로를 감시 아닌 감시를 하던 시절. 정교하고 기억 반듯할지 모르나 정이 없는 CCTV 역할을 대신했던 이웃들.

버스 안이 삭막하지 않았던 것은 로봇 태권브이 같은 안내양이 있어서였다. 지금은 어떤가. 버스를 타면 서로가 모르는 사람들이니 삭막하다. 앞으로 타서 잠시 머물다 뒤로 내린다. 끝이다. 그러니 삭막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버스에 오르면 따뜻하게 웃어주던 할머니, 조심해라 일러주며 가방 달라던 어른들, 친구들. 공기마저 훈훈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누가 타든지 관심도 없는 무표정들, 그나마 밖을 쳐다보느라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게다가 주변의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눈감아 버린 이어폰의 행렬들. 이러니 삭막할밖에. 로봇만 있는 게다.

안내양이 있던 버스는 오라이~도 있고, 내리실 분 없어요?~도 있으며, 괜스레 말 걸던 할머니의 소리도 있고, 무어라 묻는 학생들의 소리도 있고, 하다못해 승차권 세는 소리라도 있었다. 안내양이 허리 기대고 서서 버스를 둘러보면서 승객들의 안전을 살피던 그 시절이 그립다. 피곤하지 않냐면서 내밀던 캔 하나에 서로 감사하고 웃던, 그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기울이던 안내양이 있던 그 버스가 그립다.




#정을 향한 그리움 #인간의 슬픔 #과거를 묻어버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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