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면 이불과 베개에 빨갛게 수를 놓은 것도 싫었고, 얼굴에 덕지덕지 앉은 피딱지도 싫었다. 그즈음 생겨나던 깨알 같은 주근깨도 싫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싫은 것은 날마다 피 묻은 빨래를 시키는 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 대한 미움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세수하려고 엎드리면 대야에 주르륵 흘러, 맑은 물 안으로 빨간색 피가 퍼져 스며드는 모양을, 구경삼아 넋을 놓기도 했다. 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넋을 놓고 구경하는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시는 할머니의 애틋한 눈빛에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냥 한번 봐 봤어 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웃음으로 때우곤 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 지쳐서 마루에 몸을 던지던 나는 한쪽 마루가 붉은색으로 너울대는 것을 보았다. 붉은색은 더운 색인데 이상하게 청명하게 느껴지는 붉음이었다.
뭐래? 눈빛으로 물으니 할머닌 그냥 웃기만 한다. 아이고 모르겠다. 힘들어 죽겠는데 이 여름에 무얼 한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가방을 베개 삼아 눕던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붉은색을 바라보았다.
“이쁘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말을 한 모양이다. 할머니는 이쁘냐 했고 할아버지는 맘에 드느냐 했다.
“응. 맘에 드네. 이쁘네. 더워 보이지도 않고.”
“그래? 다행이네. 울 손지 깔고 덮고 잘 거인디 이쁘다니께 할미가 좋으네.”
“응. 누군 좋겠네. 손지 누구. 막내? 설마 오빠한테 붉은색은 아닐 거고.”
아무도 대답이 없다. 표정들이 다들 생글거리고 있는 게 설마.......
“설마 저거 내 거야? 저거 내 이불이야?”
“오야. 우리 손지 이불 빨래 고만하고 싶어서 할미가 아예 빨간색으로 장만했다. 이쁘냐?”
말은 이불 빨래 고만하고 싶어서라고 했지만, 표정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같이 산 시간이 아니다. 벌써 몇 해를 같이 넘어오고 있는데 표정을 모를까.
한창 민감할 나이의 손녀가 민망할 것이라며, 꼬부랑 허리로 발품을 팔아 마련해오신 붉은 천. 직접 가셨다 했다. 양동시장까지 가시려면 힘이 드셨을 텐데, 그 길을 마다치 않고 다녀오셨을 걸음을 생각하니 명치 끝이 치받친다.
나의 증조할머니는 주름지고 야윈 그 손으로, 노쇠하여 그늘이 진 그 눈으로, 힘들어하는 허리를 달래가며, 바늘을 흰머리에 석석 그어, 늦게 가려는 바늘 길을 내신다. 뻑뻑한 바늘, 머리 지름에 길들여가며, 애써 바느질하는 모습은, 나를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한다.
그 어두운 눈이, 그 주름진 손이, 붉은 천 길을 따라 한땀 한땀 증손녀의 집을 짓고 계셨다
한동안은 가슴발육이 늦어 울 노인네들 가슴을 졸이게 했다. 그나마 작게라도 여기 있네! 할 정도는 보이다 보니 좀 진정은 하셨지만, 너무 작지 않나 걱정을 놓으신 것은 아니었다.
한약이라도 묵어보자고 말이라도 꺼내 볼라치면, 나의 퉁박을 놓는 소리에 그려그려 되얐지 고 정도면 되얐어 하며 물러섰다. 뭣이 됐다는 것인지.
작아도 있으니 됐다는 것인지, 그나마 없는 것보다야 낫지 싶어 됐다는 것인지, 저 노인네들이 속을 더 긁는다. 에고에고 계란 중에 후라이요, 귤 중에 낑깡이라 놀림 받던 나는 천하 절벽이었다. 어쩔쏘냐 이것이 나의 여성인 것을. 나중에 돈 벌면 꼭! 기필코! 수술하리라 하면서 참는 나였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초경이 없었다. 남들은 다 한다는 초경이 없으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없어 좋았다. 친구들 소리는 있어 봐야 귀찮고, 여름에 냄새나고 눅진 한 것이 기분 영 더럽다고도 했다. 그 환장은 역시 우리 노인네들이 하고 있었고, 나의 환장은 그다음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만 동네 아짐들의 뒷방 소리를 거름 삼아 흰 접시꽃 나무씨 얻어 담장 아래로 조로록 심어 놓으셨다. 동네에 소문 다 났다.
내가 초경을 아직 안 했다고. 환장하겠다. 창피하고 낯부끄럽고.
울 노인네들의 극진한 사랑에 충만함을 넘어 쪽! 팔렸다.
오호통재라. 울 노인네들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저를 살리소서.
하지만 하늘은 날 살리지 못했고, 접시꽃 나무뿌리에 삶은 닭고기 진액은 날 살렸다. 노인네 세분이 쳐다보고 있으니 도망도 못 가고, 어른들은 닭고기 드시고, 나는 진득하니 맛도 이상한 국물을 마셔야 했다. 덕분인지, 나이가 묵어서인지 초경은 했으나 나의 쪽팔림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동네에서 내가 드뎌 초경을 했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울 노인네들이 소문을 낸 것이 아니라 접시꽃 나무를 더 이상 심지 않았으니 절로 소문은 났고, 울 노인네들은 이렇든 저렇든 손녀의 초경으로 장땡이었다. 나의 쪽팔림은 우리 노인네들에겐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이쁜 손녀 여성을 만들어 놨으니 행복이셨고 충만이셨다. 울 노인네들이 행복해하니 나도 충만했다
증조할머니가 지어주신 아름다운 내 집에서 내가 꾸어온 가장 이쁜 꿈을 꾸면서 난 결혼도 했고 딸아이도 낳았다. 할머니의 세월만큼 내 시간도 후딱 가버렸다.
아이를 낳아 봐야 어른이 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난 부모 두 글자를 배웠고, 내 아이의 아픔을 보면서 부모의 가슴을 배웠다. 내 아이의 웃음과 눈물을 보면서 부모의 정을 배웠다.
어린 시절 나를 보며 가슴 시려하셨을 나의 노인네들의 마음을 십분, 아니 그 이상을 이해했으며, 나의 늦은 발육을 보며 발 동동 굴러 애태웠을 그 마음을, 나는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발육이 늦는 아이였으나 나의 딸은 성조숙증이었다. 성호르몬이 너무 많이 분비되어서 생기는 병이라 했다. 가슴도 빨리 잡혔으며 초경도 빨랐다. 내 조부모는 가슴이 늦게 잡히는 손녀가, 초경이 오지 않는 손녀가 너무 힘겨우셨을 텐데, 그 손녀는
딸아이가 가슴이 너무 빨리 잡혀서, 초경이 너무 빨리 와서, 이렇게 가슴이 무너진다. 까치가 젖니를 내어 달라고 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나의 딸은 간니를 보여주었다. 설 자리가 없으니 잇몸을 뚫고 나왔다. 결국 생으로 젖니를 다 뽑아야 했다. 한 번도 나는 아이의 이를 빼 준 적이 없다. 까치가 젖니를 달라고 할 때, 안주면 화가 나서 어른 이를 안 준다고, 달래시면서 이를 뽑던 조부모와 나와의 추억, 그것도 고운 추억인 것을. 조숙증 아이를 키워 낸다는 것은 바람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부모 마음을 깡그리 다 태우고 재를 만들고서도 멈추지 않는 바람. 언제 다시 바람이 일어 그 재를 날리려 할지 모르니. 그렇게 애달픈 심정으로 아이를 키웠다. 그러면서 붉은 천 길을 내어준 증조할머니의 손길을 마음길을 읽었고, 할아버지의 접시꽃 나무의 사랑도 깨달았으며, 열심히 보듬어 주던 할머니의 지극정성도 알았다. 사람이란 것이, 늘 한 박자 늦어서 진실로 깨닫고 보면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어 후회만 남는다. 그렇게 퉁박을 주고 땡깡을 부렸었던 것이 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 알았다면, 그때 그 시절에 알았다면, 나는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늘 웃어드렸을 것을. 인제 와서 이렇게 후회를 가슴 가득히 안는다.
회한을 안고 나는 붉은 장미를 한 아름 사 들고, 차를 몰아 나의 노인들에게 간다. 살아생전에 이렇게 붉은 장미 한번 사 드려 보지 못한 후회 또한 가슴 가득 안고.
너무 늦게 알아버린 당신들의 사랑을 이제야 감사하다고, 행복했었다고, 가슴 가득 충만했었노라고, 노래를 부르러 고운 옷 차려입고 예쁜 꽃 들고 지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