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하루에 한두 번 정도가 다였다. 그저 기억도 못 하고 지나칠 정도의 아주 가끔 오는 기침이었다. 시작은 그랬다. 그렇게 내게 슬며시 찾아온 마른기침을 병이라 인식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세월을 보내면서 건강하다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어리석었다.
그렇게 열흘을 넘기고서야, 나의 기침이 그저 지나가는 객이 아닌 것을 인식했으며, 병원 가면 낫겠지 하며 쉽게 생각했다.
급성 기관지염이라 했고 후두염도 동반돼 있어, 급격하게 진행이 되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났을 때는, 나는 내가 아니었다.
이미 중증 환자였으며 5kg이 빠져버린 고위험군 환자였다.
마른기침은 이제 쉬지 않고 나를 잡고 있었고, 숨조차 쉴 수 없게 볶아치고 있었다.
이제야, 이렇게 되고서야 큰 병원을 생각했으며 급하게 옮겼다.
이것저것 수많은 검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했으나 결과는 쉬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볶아 채듯 나오는 기침 때문에 더 이상의 검사는 진행하기 힘들다 했다.
일단 기침부터 잠재우고 나서 나머지 검사를 진행하자고 하는 말에, 병원을 나서, 약국으로 향하는데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마스크를 했으나, 기침을 계속해대는 내가 반가울 리 없는 사람들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멈추어 내 곁에 잠시 머물렀던 사람들이나. 지나가는 사람은 돌아서 되도록 멀리 지나갔고, 내 곁에 멈춘 사람들은 떨어져 서거나, 멀리 걸음을 옮겨 자리를 잡았다. 나도 혹시 저랬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행히도 코로나를 피하고 있었다. 수업할 때도 힘들었으나 마스크를 꼭 착용했으며, 심심하면 손을 씻었다.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자제하면서 3년을 보냈다. 어쨌든 기저질환 환자이니 내가 조심해야 했으므로. 그렇게 보내는 3년은 요행히 코로나가 나를 비켜 갔다. 그래서였을까. 기침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그저 평소처럼 생활했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병원과 약국에 오가면서, 그리고 대기하면서 내가 받은 눈총이나, 왕따 아닌 왕따인 모습은 좀 충격적이었으며, 상처였다. 마스크를 고쳐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 손 소독을 하면서 멀찍이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모습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보는 이마다 아니라고, 기관지염이라고 일일이 말해 줄 순 없지 않은가. 얼른 처방전만 넣어 놓고는 내가 밖으로 나왔다.
밖에 있을 테니 약 나오면 크게 불러달라고 당부하면서.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눈빛에도 나는 상처를 받았다. 이해도 있었으나 어서 나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보았으므로. 쳐다보는 눈빛에도 상처받는다는 것을 오래전에 깨달았던 나는 늘 조그만 눈빛 하나조차 조심하려 애썼다. 그런데 오늘 또 한 번 눈빛에 상처받는다.
그러면서 나도 혹 저랬나 하는 마음에,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외출을 자제했던 탓에 그리 행동했던 적은 없었던 것도 같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저편에선 나도 분명히 저렇게 행동했으리라. 내 차에서 내리기를 꺼렸으며, 돌아오면 반드시 손 소독을 했다. 병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가면서 한번,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한번, 내려서 한번, 신경과에 도착해서도 한번, 진찰받고 나와서 한번 이런 식으로 보이는 곳마다 손 소독을 했다. 병원 일을 다 보고 내 차에 다시 오를 때까지 난 손 소독만 스무 번은 넘게 한 것 같았다. 환자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좀 느릿하게 걸었고, 대기하면서도 멀리 사람들이 없는 쪽을 택했다. 유별이라면 유별이었다. 그러나 난 내가 기저질환 환자이니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저들을 위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내 곁에 있던 그 환자들도 내게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저 환자도 자신과 우리를 위해서 저렇게 조심하고 있구나 하고.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런 내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분명 지금 나를 멀찍이 떼어놓는 저들과 다를 바가 없었으리라. 지금 저들도 아파서 병원을 찾은 이들이니 당연히 환자이며, 약을 타기 위해 약국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기침해대는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저들도 스스로 조심하고 있다. 알면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서운했다.
함께 사는 이 세상에서 나만 고립되는 느낌이 든 것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이렇게도 이기주의적이지 않은가.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은 나를 위해서기도 했지만, 함께 사는 저들을 위해서기도 하다면서 큰소리쳤던 내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고 행동했던 내가, 지금 나와 똑같은 행동하는 저들에서는 고립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지극히 이기주의적인가 말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그 난리를 피우면서 살았다 하더라도, 나는 이들이 없이는 살 수 없는 한낱 작은 구성원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들을 고립시켜 왔다, 내가. 세월이 변하고, 세상이 흔들리면서 단순했던 지구의 문제들이 복잡해지고 인간의 문제들이 얽히고설키고 어려워졌다. 그저 이기주의다 개인주의다 했던 문제들이 이제는 개인주의냐 집단주의냐, 개인주의라면 어떤 개인주의를 말하느냐, 모두 따지고 드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인간이 인간으로서 당장 갖는 가장 기본적인 것, 남을 생각하는 이타심보다, 자신이 이익이 먼저이면서 나를 우선으로 두는 이기주의, 개인주의를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이들보다 내 이익을 먼저 챙기는 이기주의를 생각하는 것이고. 그리고 말로는 아니라고 했으나 모든 행동과 생각은 지극히 개인주의였음을.
나는 몰랐다고 말하지만 나 또한 굉장히 이기적으로 나만을 생각했으며, 그것이 저들을 위한 행동이라 치부하고 있었다. 또한 내가 기저질환 환자라는 이유를 들어, 저들을 내 곁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라는 되지도 않는 이유를 들어가면서. 나를 위한 생각이 먼저였을 게다. 저들을 위한 생각이 아니라. 아마도 모든 행동에 저들은 없지 않았을까?
내가 다치면 안 되니까. 내가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흔들리면 위험하니까.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신경과 질환과 더불어 곤란해질 테니까. 그래서 멀리 떨어지고, 소독해대고, 될 수 있으면 돌아 걸었으리라. 말로는 저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개떡 같은 변명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랬으니 지금 저들의 행동이 이해되면서도 서운한 것은, 어쩌면 그때 그 시간에, 내가 그들에게 심었던 그 서운함과 고립감을, 돌
려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그때 그 시간에 그들에게.
이제 나는 깨닫는다. 인간은 함께 가는 동물이라는 것을. 늘 알고 있었고, 학습된 내용이었으나, 이렇게 깨닫게 되고 보니, 창피하다. 학습되는 지식과, 깨달아 내 것이 된다는 것은 천지 차이다. 부끄러움을 알게 하니 말이다. 부끄러웠으며, 형용할 수 없도록 미안함이 밀려와 몸 둘 바를 몰랐고, 더불어 창피했다.
옛말에, 강은 건너봐야 물이 깊은 줄 안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말 듣고 깨우친다 해도, 결국 인생은 직접 경험해 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배우고 깨쳤다고 생각했으나, 지식은 지식으로 끝이 나고, 결국 인생은 내가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되는, 깨닫게 되는 깊이가 있으니 말이다.
모 코미디언이 했던 이런 말도 떠오른다.
‘늦었을 때가 너무 늦었으니 지금 당장 시작하라’
우리의 인생을 꿰뚫는 통찰력 강한 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나고 나서 후회될 일을 안 하는 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과정이자 목적이 될 수 있으므로, 깨달았다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그 깨달음을 실천하라. 이제야 내 것이 되는 말이다.
완전하게 회복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 했다. 회복되면 예전에 멈추었던 봉사활동을 시작해 볼 생각이다. 지금도 늦었으니 더 늦기 전에 깨달은 지금 당장 시작해 보리라. 당장은 오히려 아픈 내가 그들에게 민폐일테니, 낫고 나서 바로 시작해야겠다.
기저질환 환자... 이므로 그래서 스스로 모든 것을 사회에서 고립시켰던 내 자신을 조금씩 내놓아야겠다. 아마도 세상은, 아마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이해하고 보듬어 주지 않을까? 나는 이제 두려움을 내려놓고 조금의 희망을 품어보면서 새로운 기저질환 환자로 태어나 볼까 싶다. 어차피 이 세상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