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Story 06화

#2. 모내기

# 난 진심으로 행복했다

by 영하

말만 휙 던져 놓고 얼른 할아버지 뒤를 따라 죽어라 뛰어갔다.

논에 도착을 같이 해야 이것저것 보고 해볼 것이 아닌가. 새벽같이 따라가서 모판을 논으로 옮기고 덩어리 덩어리로 논 여기저기에 투척해 놓았다. 나도 해보겠다고 애교를 부려 겨우겨우 몇 덩어리 투척해 보았는데 엄청 재미있었다. 오늘 하루가 정말 신날 것만 같았다.

어제는 논둑 주변에 풀을 제거했다. 처음으로 낫을 들고 풀을 베어 보는데 왼손으로 풀 한 줌 잡고 오른손 낫을 바깥으로 돌려 내 안쪽으로 당겨 풀을 벤다. 천천히 가르쳐 주시는데 재미가 쏠쏠했다. 꼭 장갑을 껴야 한다 해서 손이 더디었으나 재미는 있었다. 할아버지는 연신 배우지마라 그런 건 뭐 하러 자꾸 해보려 하누 하셨지만 내가 한거라곤 꼴랑 얼마 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만큼 빨랐던 거다.

그래도 나는 처음 잡아본 낫이, 처음 해보는 낫질이 재미있었고 그만큼 신이 나 있었다. 그 기분이 오늘 새벽 일까지 더해져 오늘 하루가 정말 기대가 되고 있었다.


할아버진 좀 걷자시며 사박사박 걸어 논에 가는 동안 울 손녀는 왜 다른 집 딸들처럼 다른 것에 취미를 못 갖고 이런 농사일에 관심을 갖느냐고 물었고 관심 아니다고 그냥 안 해본 일 해보고 싶은 거라고 농사짓고 살진 않을 거라고 울 노인네들 보니까 나는 힘들어서 못하겠드라고 했다. 울 손녀는 이 할배 안 닮았음 좋겄다고 이래저래 재주가 많은 울 손녀를 보면 할배를 닮았나 싶어 맘이 안 좋다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 삶이 고달픈 법이라고 했고 난 괜찮다고 재주가 없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나는 이런 시간들을 사랑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상할머니와 나누는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이런 시간들을 많이 사랑했다. 그러므로 난 진심으로 행복했다.

논에 도착해서 바라보는 네 필지 논은 거대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필지가 어느 정도의 땅을 말하는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하루 종일 모내기를 해서 끝냈으니 어린 내 눈에 그 논들은 광활해 보였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들뜸은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날아다니고 있었다.


노끈이 감긴 쇠말뚝 두 개를 꺼내시더니 내게 주시면서 놀자고 온 거 아니니 밥값은 해야제? 하시더니 논둑 시작 지점에 박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머지 말뚝을 주시면서 논 끝까지 들고 가서 잡아당겨 할아버지처럼 박아 놓으라 하셨다. 쉬웠다. 논둑을 걷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그 어떤 일보다 쉬웠다.

할아버지는 고무장갑처럼 생긴 고무장화를 허벅지까지 올려 신고 논바닥으로 들어가셔서 투척해 놓았던 덩어리 모들을 듬성듬성 조금 더 촘촘하게 던져 놓으시는 일을 하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까지 오시더니 내가 박아 놓은 말뚝을 더 세게 잡아당겨 견고히 다시 박아 놓으셨다. 그때쯤엔 그날 일하실 아짐들과 아재들이 하나둘 오셔서 일할 채비를 하고 계셨다. 멋있어 보였다. 누구 하나 예쁜 옷을 입고 멋을 부린 사람은 없는데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채비를 하는 모습이 아침 햇살과 부딪쳐 진정으로 멋있었다.





#모내기추억 #연재 #그리움 #에세이

keyword
이전 05화1.모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