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Story 07화

#3.모내기

# 쪽팔림은 파란빛에 더욱 선명해지고

by 영하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난 배제되어 있었다. 모를 놓는 모잽이에도 나는 없었고 못줄잽이에도 나는 없었다. 잉? 이건 아닌데... 멋있네 타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열심히 뛰어서 나는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모두 다 약속이나 하신 듯이 아무도 대답이 없으시다. 이건 진짜 아닌데. 할아버지 한 분 이기기도 힘든데 동네 어른들이 약속이나 하신 듯 네가 무슨 일을 한다고? 이런 눈빛이면 곤란한데. 이놈의 동네가 집성촌이어서 거의 모든 분이 다 친척이고 다 아재고 아짐이다. 가끔 다른 성씨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내 편이 없다는 이야기다.

쉬운 거, 쉬운 거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못줄잽이 하는 걸로 결론 봤다. 다행이다. 즐거운 마음에 어깨가 올라가는데 아재가 스윽 지나가면서

쉽지 않을게다~ 끝까지 해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머리 대머리 된다며 웃으셨다.

잉? 저거 협박이여, 아님 격려여? 우쒸하는데 일은 시작되고 할아버진 못줄잽이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셨다. 아까 논둑에 박아 놓은 노끈에는 노란 꽃이 20cm 정도의 간격으로 달려 있었고 모잽이 어른이 “어이” 하면 옮겨 박는 못줄을 그 노란 꽃에 맞추고 상대 쪽에 있는 못줄잽이랑 맘을 맞춰서 팽팽히 당기고 꾹 박아 놓아야 했다.

그리고 모잽이들에게 눈을 뒀다가 한 줄 끝나간다 싶으면 얼른 옮겨 다시 그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한순간도 모잽이들에서 눈을 떼서는 안 되고 상황을 보고 얼른 옮기고 당기고 박고 다시 반복하고...

쪼그리고 앉아 옆으로 옮겨가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치껏 일어났다 앉았다 해보고 어깨 돌리기도 해봤으나 허리고 다리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거기다 당기고 박고 해야 하니 어깨는 어깨대로 힘이 빠지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메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이럼 창피한데. 머리 대머리 된다 했는데. 문득 아재의 웃음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 더욱 힘들다 소리는 못 하겠고 몸은 죽겠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데 속도가 점점 느려지니 모잽이 하시는 분들이 웃으시기 시작하셨고 결국은


“이제 고만 물러나제? 너 땜시 일이 속도가 안 난당게.

많이 버팄다, 그정도믄. 하하하.

어찌냐 농사가 그리 쉽지는 않제? 아재요, 여그 귀한 손녀 죽어 간당게요.”


일하시는 분들이 하하 호호 웃으시고 나의 쪽팔림은 하늘을 찔렀다.

하늘은 그런 건 상관없고 그저 맑은 파란빛이었다. 나의 쪽팔림은 그 파란빛에 더욱 선명해지고 더불어 대머리도 선명해졌다. 할아버지께서도 웃으시더니 당신이 하신다고 물러서라 했다. 아이고 죽을 뻔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겠느냐마는 못 줄 하나 옮기는 일도 해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바보 같았다. 나도 할 수 있다고 끼워 달라고 투정 부리던 불과 조금 전에 상황이, 끼워져 좋다고 웃었던 것이 너무 창피하고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니 쥐구멍을 찾을 기력도 없었다. 논둑을 겨우 걸어 나가 퍼져 누워 버렸다.




#모내기 추억 # 그리움 # 에세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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