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Story 09화

#5. 모내기

# 이렇게 맨날 흙하고 함께 사는디

by 영하

모심기 좀 해보면 안 될까요? 많이도 아니고 조금만. 그냥 조금만 해볼게요. 모심기 한 번도 안 해봤잖아요, 응? 아재 한 번만. 손그락 하나 세워 응?응? 하면서 몸을 꼬니 아짐이 먼저


아이고, 그래 해봐라. 니 고집을 누가 꺾겄냐?

어울리도 않는 그 웃음질은 고만 허고. 어째 저리 하고 싶은 거이 많을까나.”


하시면서 자리를 내어 주신다. 얼른 바지를 걷고 논바닥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건네주시는 모를 잡았다. 가르쳐 주시는 대로 두세 포기씩 잡아 손을 곧추세우고 빨간 꽃이 피어있는 노끈 아래로 모와 함께 손을 쑤욱 내리 꽂았다. 진흙 같은 부드러운 흙이 손톱을 파고들어 오는 느낌이, 손안의 모를 흙 안에 꽂아 놓고 나오면서 느껴지는 또 한번의 부드러운 흙의 느낌이 좋았다. 이러니 손톱 밑이 맨날 때 낀 것 모냥 시커멓지. 이렇게 맨날 흙하고 함께 사는디.

나의 노인네들은 유난히도 손톱 밑의 때를 두려워했다. 참외를 깎아 주면서도 손을 감추려 했고 수박을 썰어 줄 때도 손은 잘 안 보여주려 애를 썼다. 웃긴 것은 그 손으로 나물은 잘만 무쳐 주더만. 난 또 나물 귀신이라 노인네들은 밭에서 집에 가다가도 민들레가 보이면 캤고 나는 이름도 모르는 연약한 풀만 보여도 캐서 맛있게 무쳐 주었다. 그, 때 낀 손으로. 맛만 있더만. 모르진 않았다. 혹여나 내가 몸이 부실한 것이 당신들의 그 손톱 밑에 때 때문일까 봐 조심해 하신다는 것을. 그것이 내 가슴을 가끔 얹히게 했다.

나의 손톱에도 그, 때가 끼어 간다. 울 노인네들이 늘 끼고 사는 때가.

요건 쉽네... 하하하.

쉽긴. 몇 번 뒤로 물러서며 심다 보니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이번엔 조금만 해보겠다 미리 애교를 피웠으니 금방 그만 해도 덜 창피할 것이라는 이상한 자신감으로 두 줄만 더하고 나가야지 하면서 못줄을 따라 한발 뒤로 물렀다.

아까부터 왼쪽 다리가 가려웠다. 뭐지? 슬쩍 긁고 나서 다시 모를 심고 못줄 따라 다리를 옮기면서 자꾸 가려운 왼쪽 다리를 들어보았다.

헉! 저거 뭐야? 뭔 까만 지렁이 같은 것이 다리에 붙어서 설레설레 흔들거리고 있었다.

으악!!!!! 아재! 아재! ~~ 아짐~~

나는 놀랐고 뒤로 벌렁 넘어졌고 논바닥으로 빠졌다. 차가운 흙탕물이 입으로 들어와 또 다른 놀라움에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부터 위아래 옷은 다 젖었고 그 와중에도 왼쪽 다리는 들고 있었다. 입에 남은 흙을 뱉어가며 손으로 지렁이를 열심히 쳐 봤지만 헛짓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다시 발딱 일어나서 밖으로 정신없이 뛰어나갔고 논둑에서도 아재를 열심히 불렀지만 멀리서 모를 심던 아재는 오는 발걸음이 더뎠고 내 다리의 까만 지렁이는 계속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가까운 곳의 아짐이 오셔서 손으로 잡아보려 했지만 미끄러운지 잡히지 않았고 결국 풀 한 줌 뽑아 쳐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팔짝팔짝 뛰어도 봤으나 방법이 없던 나는 누가 잡을 새도 없이 뛰었다. 아재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오직 할아버지만 생각났다. 죽어라 뛰었다. 나의 노인네들이 있는 나의 요새를 향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죽어라 뛰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헉헉. 할아버지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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