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찬엽이...... 같다. 몰골이 흙탕물에 빠졌다 나와서 온몸이 흙탕물에 젖었지, 머리며 얼굴이며 온통 흙탕질에다 일할 거라고 빌려 입은 할매 몸빼바지 한쪽은 내려왔지, 한쪽은 내려갈까 봐 추켜 잡고 뛰었으니 남들이 봤을 땐 영락 없는 찬엽이다.
거그다 뛰느라 대충 겉은 말랐을 거인디 안 봐도 뻔하다. 얼굴도 젖은 팔로다 눈물 닦는다고 석석 비벼서 볼만 할 것이다. 비비면서 쓸켜서 아픈 것이 온통 흙투성이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프다, 다리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고. 정신이 돌아오나 보다. 아픈 것도 느끼고. 찬엽이도 알고. 그리고 멀리 달아났던 나의 수치심도 돌아왔다. 논바닥에 벌렁 자빠진 나의 모습이 자꾸 보였다. 그러고 보니 모심은 거 밟아버린 거 같은디. 논바닥에서 뛰쳐나올 때 모 심어 놓은 곳으로 나오지 않았나??
동네 어른들도, 논에 계신 어른들도 다 봤을 거인디. 오메 창피해서 인자 얼굴을 어찌 들고 살 거여.
“봐라, 울 큰 손녀는 걱정 안 해도 쓰겄다 했제?
어따 내놔도 쉬 엎어지지 않는당게. 너그들은 몸이 약하다고 늘 걱정해싸도. 봐라 거서 여까지 뛰 온거. 죽고 잡든 안 했든 것이제.
지 살려 줄 사람이 여 있는 줄은 알았다는 것이제. 아, 안그냐? 애썼다. 내 새끼.”
어느새 상할매는 마당까지 걸어와 등을 토닥이며 웃고 계셨다. 그리고 들고 오신 물을 주셨다. 슬쩍 아무도 모르게 약도 손에 쥐어 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셨구나.
점심 준비해서 나오시려고 바삐 움직이시던 도중이셨단다. 나는 할매가 힘 빼고 때리는 등짝 한 대 얻어맞고 조용히 사랑방 아궁이 불 지펴 물 끓였다. 상할매가 챙겨 준 약 털어 넣는 건 잊지 않았다. 찬물에 씻으믄 추우니까. 감기까지 걸리면 더 큰 일이 날 테니까. 얼굴 상처가 많이 쓰렸지만 일단 패스.
상할매는 얼른 씻을 수 있게 도와주셨고 나는 조용히 점심 만드는 것을 도와 드렸다. 저번에 알려드린 비빔밥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냥 집에서 먹는 비빔밥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내가면 욕먹는다고 그래서 배운 걸 좀 알려 드렸다. 당근, 오이는 채 쳐서 따로 김치통에 넣고 상추도 자르고 계란 고명은 아침 새참 때 많이 준비해 놨고 나물 무친 것하고 소고기 고추장하고 참기름 하면 절대 집에서 먹는 비빔밥 아니니까 걱정도 말라고 했다. 한꺼번에 몽땅 넣고 가져가지 말고 따로따로 가져가서 어른들께 알아서들 비벼 잡수라고 그러면 된다고. 그리고 일단 된장국 맛있어서 괜찮을 거라고. 챙겨서 할아버지 경운기에 싣고 할머니 태우고 배웅했다. 표면상으로야 상할매 혼자 점심 드신다는 것이 핑계였지만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내가 창피해서 못 간다는 것을. 아이고 이 수치심을 어찌 감당할꼬. 이 좁은 시골 동네에서 내 오늘 일이 사라지기까지 겁나 오래 걸릴 거인디.
상할매 진지를 차려드리고 함께 밥을 먹는데 또 배는 고팠는지 밥은 잘 들어간다.
배고팠네. 사람이 수치심은 수치심이고 배고픈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게야. 뭐 창피하다고 밥을 굶을 필요는 없으니까. 게다가 할매가 만든 소고기 고추장도 맛있고 된장국도 겁나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