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Story 12화

#8. 모내기

# 뭣 땜시? 이유가 뭣인디?

by 영하


“잘 묵네. 안 묵으믄 어쩌나 걱정했드마는. 그렇지, 그래야 울 손지지.

맘에 담지 마라 잉.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닌게. 살다 보믄 더 한 일도 있는디. 또 금방 다 잊어뿐다. 넘 일에 그리 크게 맘 두고 안 사니라. 알긋제?”


“근데 할머니 나 아까 가슴 아픈 거 어떻게 알았어? 티 났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알았을까?”


“모를 것이여. 나야 옆에서 가만 쳐다보고 있응게 알았제. 거머리 띠니라 느그 할애비 할매 정신없었다. 걱정 놔도 된다. 손이 가슴에 가 있더만. 뛰니 아펐겄제.”


고개만 끄덕이고 비빔밥 한 그릇 후딱 비우고 할머니 물심부름하고 상 치우고 평상에 누워 부신 햇살 바라보니 생일인디 피 봤단 생각이 스친다. 그러고 보니 다리 피는 멈췄나?

슬그머니 감아놓은 천 쪼가리를 보니 여전히 피는 나나 보다. 멈추려면 시간이 좀 있어야 한다더니 진짜로 그럴 모양이다. 피를 뜯긴 시간이 길어서 더군다나 쉬 멈추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상할매가 약을 가져와 얼굴에 발라 주셨다.


“아이고 이 연한 살이 이리 슬켜서 어쩔거나, 흉이라도 지믄 또 어쩔 것이여.

안 아프냐?”

괜찮다고 했다. 실은 쓰럽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흉이 질까 봐. 못생긴 얼굴에 줄까지 그어 놨으니 이삐겄다. 볼만하겠네 한동안. 사라질 동안 또 놀릴 것이다, 울 노인네들. 애휴.

이럴 때 전라도 말로 아주 잘 표현된 말이 있다. 지랄 염병을 하고 자빠졌네.

진짜 오늘 하루가 아니 반나절이, 아니 이 맑고 맑은 날이 지랄 염병을 하고 자빠졌다. 에고.



돌아오신 할아버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화가 나셨지?

점심상을 받아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있는데 슬며시 옆에 할머니 앉으시며 할아버지 화나셨다 일러 주셨다. 나 때문이라고. 한구탱이 더 때려주려다 할머니도 참고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뭣 땜시? 이유가 뭣인디?

온 동네 어른들이 모두 걱정하시는 통에 점심이 늦어졌다고. 어른들이 할아버지 경운기 세우시고 집이 손녀 괜찮냐고 다 죽어가든디 병원 안 가봐도 되냐고 다들 물으셨단다. 헐떡이며 기어가던데 진짜 괘안냐고. 아파서 어디 물에라도 빠진 모양이던데 당신들이 데려다준다 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기어이 가더란다. 걱정됐었는데 이리 본다면서 보시는 분마다 세워 묻기를 반복하셨단다.

그러고 논에 갔더니 논에 있는 식구들이 또 한바탕 물어오셨고 모를 밟고 나가시는

이쁜 손녀 덕에 모 작업도 다시 하셨단다. 어쩐지 밟았지 싶었어. 에고에고 인간아. 나와도 왜 그쪽으로 뛰쳐나오냐고. 아무리 놀라도 모는 밟지 말았어야지. 다 큰 기집애가 뒤로 벌렁 나자빠져 흙탕물에 빠지질 않나, 발랑발랑 모내기해 놓은 한 가운데를 밟고 뛰는 모습이라니. 수치심 한 개가 더 보태진다.


“아가 괜찮냐? 얼굴색이 왜 그냐, 왜 아프냐?”


내가 얼굴색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며 할머니는 걱정스레 물으셨다. 아니다고. 괜찮다고. 그냥 할아버지한테 혼 날것을 생각하니 걱정돼서 그런다고 걱정마시라 했다.

이런 씨... 들켰다. 들키지 않으려 그렇게 애썼는데. 아이고 머리야.




#모내기 추억 #에세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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