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여기까지...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뛸만한 거리다. 그러나 난 좀 달랐다. 심장이 약한 나는 거기서 여기까지가 뛰어선 굉장히 힘든 거리였다. 거기다 뛰면 힘든 부족한 사람이 뛴다고 뛰었으니 결국 사달이 났다. 가슴의 통증은 심해져 왔다. 겨우겨우 부여잡고 동네까지는 어떻게 왔는데 더는 무리였다. 어른들께 보이는 미친년 넋 빠진 모습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점점 커져서는 다리에 붙어 있는 지렁이가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가슴의 통증이 더 심했다. 결국 고샅길 아래서 뻗었다. 한참을 그렇게 정신 넋 놓고 있다가 통증이 좀 가라앉길래 집에 온 것이었는데... 통증이 가라앉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다시 시커먼 거머리가 무섭기도 해서 부랴부랴 힘을 내서 기어 올라왔는데. 하여간 이놈의 시골 동네는 뭘 감출 수가 없다. 찬엽이 정도에서 끝나주지. 어른들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 우쒸.
할아버진 말씀이 없으셨고 난 침묵으로 대죄를 고했고 할머니들은 안절부절 하셨다. 오후 새참 준비 안 하냐고 할머니께 물으니 할아버지가 읍에 맡겨 놓으신 것이 있어서 찾아오셔야 한다고. 뭐 다행이네 하고 평상에 누워 이 창피함으로 어찌 동네를 다니나 궁리를 시작했다. 시작만! 했다. 할아버지께서 깨우셔서 일어났다. 잠이 들었었나 보다. 뭐 배부르고 등 따시고 햇살 따시고 충분히 자고도 남을 조건이었다. 아직 수치심이 덜 들었나 보다.
“충분히 잤음 일어나제? 뭔 잠을 더운 데서 그렇게 잔다냐. 얼굴 탄다. 봄 햇살엔 딸 대신 며느리 내보낸다는 말도 못 들은겨? 그런 것도 모른게비네. 얼렁 일어나. 할아버지랑 새참 내 가야제.”
뭘~~ 그럼서 우산으로 얼굴 가려 놨구만. 헤헤
“나도 가?”
“그럼 안 가? 어여 움직여, 늦겄다.”
나의 이 수치심을 할아버지는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서럽다. 웅얼웅얼 내가 들어도 못 알아들을 말들을 늘어놓는다.
“똑바로 말 안 하냐? 애기여? 다 큰 놈이 왜 웅얼거려 웅얼거리긴?”
이젠 창피하고 서러워서 눈물도 난다. 충분히 나의 마음을 알면서 무시하는 할아버지가 서운해서 더 눈물이 난다. 말한다는 게 우니까 더 웅얼거리게 된다. 따라 나오라는 할아버지 말씀에 이젠 죽었다 싶어 한숨 한번 쉬고 상할매 한번 바라보고 뒤따라 나간다. 얼른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