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Story 14화

#10. 모내기

# 계속 꼬랑지로 달고 다닐 것이여?

by 영하


“챙피허고 넘사스럽다 이것이제 시방, 울 손녀가.

다 크긴 했네. 챙피헌 것도 알고. 챙피해야제 암. 다 큰 처녀가 그러고 동네를 돌아댕겼으믄 챙피허고 또 챙피해야제. 그것도 모르믄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잘못 키웠겄제...

잘했다. 사람이 그렇게 챙피한 것도 알고 넘사스러운 것도 알아야 사람 노릇하고 사는 것인게.”


칭찬이 아님을 안다. 할아버지가 저러고 나올 때가 제일 무섭다. 부모가 성칠 않으니 예법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격하신 분이시다. 절대로 살면서 후레자식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교육 중 맨 앞에 있었다. 그것이 어찌 내게만 해당되겠는가 당신도 성치 않은 자식을 둔 덕에 늘 조심하시고 또 조심하시면서 사시는 분인 것을. 울 노인네들이 다 그러했다. 그것을 오늘 내가 오지게 망친 것이다. 여러 가지로.


“헌데 아가. 챙피하다고 도망 댕기고 피해다님서 무슨 일을 할라고? 글고 그것이 언제까지 도망 댕길 수 있겄어.

여그 다들 친척들이고 아는 분들인디? 아예 도망을 가서 안 보고 살라고?

이 할애비랑 사는 동안은 어디 도망도 못 가는디 어쩔라고. 얼굴 숙이고 다닐래?

그것이 아니믄 그때 바로 그 챙피함을 털어버려야제.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이 아조 잘해 부러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다냐 싶게 말도 못 나오게 해 불든지. 그리 못 하겠거든 죄송하다고 사과하든지. 잊어 달라고 다음부턴 이런 일 없겠다고 정중허니 말씀을 드리든 해서라도 털어버려야제. 안고 있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게. 안고 있어서 좋은 일이 있고 털어버려야 좋은 일이 있응게.

지나가기는 허겄제. 그리 피해 댕기다 보믄 지나가기도 허지만 털어지지는 않겄제. 늘 뒤통수가 가려울 거 아녀. 계속 뒤통수 찜찜허니 그러고 댕길 것이여?

그리 끙끙 앓고 울면서 집에서 안 나가려고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당게. 오히려 더 집안으로 숨어 들었으믄 숨었지 나오기는 쉽지 않은 법인게. 할아버지 생각엔 지금이 딱 그때여, 일 저지르고 난 지금이 털기 딱 좋은. 뭔 일이든지 바로 그때가 젤로 적기라고 말했제? 거짓말도 바로 그때 바로 잡아야 하고, 실수도 그때 당시 바로 잡아야 잡히는 것이여. 시간이 가면 오히려 군더더기만 느는 법이니께. 계속 꼬랑지로 달고 다닐 것이여?”


우느라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데 가자 집에 어서 가서 새참 내 가야제, 올 때 됐을 거인디 하시면서 앞장서 걸으신다. 결국 할아버지 말씀이 옳으신 게다. 가서 소란 피워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잘못했다 빌어야지. 그래도 창피함은 남고 부끄러움은 가져가야 할 내 몫인 게다.

내 덕에 새참이 많이 늦었다. 허기지실 것인디. 그제야 걱정이 된다. 읍에 가신다던 할아버지는 전화로 부탁하셨고 다행히 논으로 바로 가지고 온다는 것 같았다.

뭐 모든 일이 어 나네 글메 그렇게 됐네 부탁 좀 허세, 그럼 끝나던데 뭘.



#모내기 추억 #에세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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