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Story 10화

#6. 모내기

# 근디 나는 왜 이렇게 웃음이 난다냐

by 영하


고샅길부터 소리를 지르면서 기어 올라갔기에 나의 노인네들은 모두 다 마당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내 몰골을 보고 나의 상할매는 토방에 앉아 버리셨고 두 노인네는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서버리셨다. 행여 부실한 몸이 탈이 났을까 염려했다가 그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하시곤 논둑에 있다가 헛디뎌 논바닥으로 떨어진 줄 알았다고 하셨다. 논에 무슨 난리라도 난 줄 아셨단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놀라기도 했겠다 싶었다. 온몸을 흙탕물에 담가 그지꼴에다가 얼굴은 흙에다가 눈물에다가 애가 정신은 없고 얼마나 놀라셨겠는가. 지금이야 죄송하다 생각도 들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할아버지하고 불러놓고 손으로 왼쪽 다리를 가리켰다. 엉엉 울면서 이게 안 떨어진다고. 눈물을 닦으면 흙이 얼굴을 닦으면서 쓸키고 상처가 나고 상처는 또 쓰럽고 또 아프니까 서럽고.

참 볼만했으리라. 할아버지는 목장갑을 끼고 오셔서 마당에서 흙을 묻히시고 까만 지렁이를 꼭 잡고 떼시는데 잘 안 떼지시는지 살살 달래가듯이 움직이시는데 난 화가 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그냥 떼, 아니 그냥 죽여 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할아버지는 떼는 데 성공하셨다. 나는 쓰러지듯이 평상으로 주저앉았다. 그렇지만 이미 그 까만 지렁이는 처음 봤을 때보다 통통해져 커 있었고 나의 피는 멈추지 않았다. 할매는 물을 떠 오셔서 계속 그것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물만으로 씻어 주셨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고샅 또랑에 버리고 오시면서


“아이고, 놀래라. 찰거머리라는 것이여. 피 빨아먹는 거머리말이여.

있다고 안 했냐 왜. 그니까 논바닥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할애비가 말 안 해? 아재한테라도 띠어 달라고 허제, 여그까지 달려왔냐. 죽고 잡지는 않았는갑다. 여그까지 꽁지가 빠지게 달려 온 것이. 근디 나는 왜 이렇게 웃음이 난다냐......”


그러고 보니 울 노인네들 모두 다 얼굴들이 말이 아니네?

울고 있는 건 나 혼자고 노인네들은 웃음을 참느라 얼굴들이 말이 아니었다. 결국 할매가 터졌다.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웃어 가면서도 손은 열심히 다리에 물은 떠서 닦으시면서도 말은 말대로 던지고 있다. 잘 알아먹지도 못하겠구만.


“아적부터 설치고 댕길 때부텀 알아봤당게. 뭔 일 하나 터지겄구나 했당게 내가. 결국은 하나 맹그는구만. 거그서 여그가 어디라고 뛰어왔을 것이여. 거그 아재들한티 띠 달래도 띠 줬을 거인디. 거그 양반들은 또 얼매나 놀랬을 거여. 저 몰골로 뛰어왔으니. 아이고 동네 사람들도 놀랬겄다, 찬엽이 돌아댕기는 줄 알고. 아이고 웃겨 죽겄네.”

“할머니!”


찬엽이는 동네에 돌아다니는 정신 놓은 여자였다. 보이지 않다가도 가끔 동네에 나타나 여기저기 웃으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면 동네 어른들께서 똑같은 말씀들을 하셨다.


“찬엽이 저러고 돌아댕기는 것이 곧 비 올랑갑소.”


하물며 울 노인네들도 그랬다.


“찬엽이 저거 보이는 것이 낼은 비 올랭게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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