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자립이 왜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가?(2)
심리적 자립이 왜 우리에게 왜 지금 모두에게 필요할까? 의 두 번째 이야기
"심리적 자립이 없이는 진짜 성장이 불가능한 이유"
나는 양육시설(보육원) 보호대상아동을 위한 자립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원하며,
많은 보호 대상 아이들을 만났다.
여느 일반 가정의 부모들처럼
정부에서도, 사회복지기관에서도, 아이들의 자립에서 경제적 자립준비가 우선이었다.
안정적인 직장, 좋은 집, 평안한 삶..
이것을 성장해서 독립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같다.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고, 정말 멋지고 양질의 자립프로그램을 지원했음에도
어떤 아이는 퇴소 후 많은 지원을 하지 않았음에도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갔고,
또 어떤 아이는 비교적 많은 지원을 했음에도 그 삶을 유지하는 거조차 버거운 아동도 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어낸 걸까?
그건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었다.
양육시설을 퇴소한 스물셋의 민지는 LH에서 지원을 받아 서울 외곽의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살아간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그녀에겐 큰 싸움이다.
"어차피 오늘도 의미 없을 텐데… 왜 일어나야 하죠?"
민지의 방은 정리되지 않은 빨래와 설거지, 늘어진 커튼, 쌓인 컵라면 봉지들로 채워져 있었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녀의 하루는 늘 제자리걸음이다.
누가 그녀를 나무랄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민지는 부모의 방임 끝에 시설에 맡겨졌고,
거기서 자리면서 일상을 '스스로'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 역할을 하는 '생활지도원'은 주 52시간 3교대 근무로 자주 바뀌고,
그에 따라 양육태도 달라져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아파트 구조로 되어 있지만, 밥 먹는 것조차 "식당"에 내려가서 먹는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언제 씻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정해져 있었어요.
내 선택이라는 게 거의 없었죠."
민지는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해 보는 기회가 적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혼자 선택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매 순간 두렵고 혼란스럽다.
문제는 생활만이 아니었다.
민지는 일터에서도 자주 위축됐다.
"매장 점장님이 목소리를 높이면, 바로 어릴 때 기억이 떠올라요.
또 내가 잘못했구나 싶고, 그게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해요."
그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좋은 말 한마디에 또다시 모든 걸 맡긴다.
"누군가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주면... 그냥 전부 믿어버려요."
그렇게 퇴소한 뒤, 민지는 자신을 버렸던 부모의 말 한마디에 따라 자립정착금을 모두 넘겼고,
며칠 만에 내쫓겼다. 버려졌던 기억이 반복되었고, 이번에 상처가 훨씬 더 깊게 남았다.
"그냥… 잘해주니까 믿었어요. 가족이니까…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 말에서 나는 절망보다 더 깊은 상처를 느꼈다.
그것은 단지 배신감이 아니라, '자기를 지킬 수 없는 내면'의 고통이었다.
민지처럼 '심리적 자립'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타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의존하게 된다.
누군가 조금만 잘해주면 마음을 다 열어버리고, 그 관계가 무너지면 함께 무너진다.
같은 시기 퇴소한 재훈이는 달랐다.
면접에서 떨어져도, 일이 힘들어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움직였다.
그의 차이는 심리적 자립의 '기반'에서 왔다.
양육시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그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양육시설 선생님이 항상 말해주셨어요.
"재훈아, 네가 실패해도 괜찮아. 넌 언제나 소중한 사람이야."
그 말 한마디가
재훈의 중심이 되어주었다.
단 한 사람의 믿음이 그게 기준이 되고 기반이 되어 한 아이의 평생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경제적 자립'만 강조하는 건 마치 뿌리 없는 나무에 물만 주는 것과 같다.
기초가 없는데, 표면만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건 보호대상아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부모님들이 주고 싶어 하는 경제적 풍요, 경제적 자립을 위해
의대입시열풍이 불고, 7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하는 사회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경제적 자립에 집중하라며, 부모가 모든 장애물을 손수 치워지기도 하고, 아이의 인생을 계획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지나치게 간섭받고, 실패를 허락받지 못하고, 감정표현을 통제받은 채 자란 경우
민지처럼 흔들릴 수 있다.
성인이 되어 혼자 살아가야 할 때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비교에 휘둘리며,
타인의 인정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삶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무너져도 다시 받아줄 부모가 있다는 것,
그 차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위기'를 더 늦게 드러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이들도 부모가 어느 순간 부재하게 되면 더 크게, 더 쉽게 무너져 삶을 더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경제적 자립보다 먼저, 심리적 자립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내면의 힘은 타인의 인정 없이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자존감이고,
실패 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고,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나를 돌볼 수 있는 자기 이해다.
하지만 이것은 단번에 길러지지 않는다.
심리적 자립은 반복되는 작은 연습들 속에서 자란다.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해보자’고 말해주는 어른과의 관계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한 번의 경험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존중받았던 기억
이 작은 경험들이 쌓여 아이의 뿌리를 만들어간다.
진짜 성장은 단단함이 아니라, 유연함에서 시작된다.
심리적 자립이 있는 사람은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고,
외로워도 자기 마음을 알아차릴 줄 알며,
속도가 느려도 나만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성장의 힘이다.
다음화에서는,
심리적 자립이 왜 우리에게 왜 지금 모두에게 필요할까? 의 세 번째 이야기
"현대사회에서 더욱 절실해진 심리적 자립" 주제로 이어나갑니다.
비교와 속도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왜 더 자주 무너지고,
왜 더 간절히 심리적 자립이 필요한지 함께 이야기해보려 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따뜻한 위로와 내면의 뿌리가 닿기를 바라며
모라의 정원이 함께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심리적 자립이 필요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오셨는지 댓글로 나눠주시면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지와 재훈의 사례는 특정한 사례를 소개하여 개인정보가 노출시킨 것이 아닌 양육시설에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들의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