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 아이를 키우려면(1)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 아이를 키우려면(1)
“혹시 아이가 넘어질까 봐, 아이가 가는 길의 돌멩이를 미리 다 치워주고 계신가요?”
아이가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 하면 바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고,
친구와 다툰다고 하면 상대방 부모에게 연락해서 해결하려 하고,
숙제가 어렵다고 하면 옆에 앉아서 답을 알려주고...
이런 모습들, 혹시 낯익지 않으신가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들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다 해결해 주는 게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일까?”
그런데 막상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더 아프고,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우리 아이만큼은 상처받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어.”
“실패하는 경험 없이 행복하게만 자라길 바라.”
이런 마음, 정말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부모의 마음이죠.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점점 커가는데도 여전히 작은 문제 앞에서
“엄마, 어떻게 해야 해?” “아빠가 해줘”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요.
그리고 가끔 이런 아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부모가 모든 길을 깔아주었는데,
처음으로 혼자 마주한 실패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아이들을요.
실패는 누구에게나 두렵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자녀가 상처받는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죠.
그래서 우리는 실패를 줄이기 위해 조심시키고,
넘어지지 않게 미리 길을 정리해 줍니다.
하지만 그 결과, 아이는 실패를 겪지 못한 채 자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순간,
처음으로 부딪힌 실패에 완전히 무너지는 아이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실패는 그 자체로 위기이기도 하지만,
그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기회가 되기도 하고, 낙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아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처음 실패를 마주했을 때 옆에 있었던 사람,
바로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사례가 아니라,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제 아이가 유치원 시절, 하원 후 늘 가던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노는 걸 무척 좋아했죠.
그런데 어느 날, 여러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저는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멀뚱히 서 있는 제 아이를 발견했어요.
아이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고,
금세 제게 다가와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고, 저는 그날 아이와 함께 놀이터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후,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내 기준에 의해 ‘예의 바르고 따뜻한 친구들’만 골라
집으로 초대해 교류의 기회를 만들기 시작했죠.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에는 저의 어린 시절 경험이 반영되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어릴 적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무리에서 종종 소외되곤 했어요.
그때 느꼈던 외로움,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삼켰던 감정들…
그 기억이 되살아났던 거죠.
저는 아이의 감정보다,
내 감정에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제가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해주었어야 했던 말은,
“많이 속상했구나. 친구들이 같이 안 놀아줘서 서운했지?”
하는 공감이었고,
“그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물어봐주는 코칭이었음을요.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상황을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기회를,
저는 저도 모르게 빼앗고 있었던 것이죠.
애착 이론의 아버지 존 볼비(John Bowlby)는
부모를 ‘안전기지(secure base)’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이가 세상을 탐험하다가 힘들 때 돌아와 쉬고,
위로받고,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는 곳—그게 바로 부모인 거죠.
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연구에 따르면,
안전한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탐험하고,
문제 상황에 더 유연하게 대처한다고 합니다.
아이 안에는 이미 해답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은 종종 놀랍도록 성숙한 답을 내놓습니다.
“다시 가서 같이 놀자고 말해볼까?”
“다른 친구한테 가서 놀아볼까?”
“혼자서도 재미있는 놀이를 해볼까?”
부모가 감정을 수용해 주고, 질문해 주는 그 순간,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키워갑니다.
심리학자 앨런 스로우페(Alan Sroufe)의 종단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안전한 애착을 경험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효과적으로 대처한다고 합니다.
아이의 실패 앞에서 부모의 반응은 각기 다릅니다.
어떤 부모는 담담하게 지켜보지만,
어떤 부모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이 격해지기도 합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많은 경우, 그것은 부모 자신의 과거 경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릴 적 충분히 위로받지 못했던 실패의 기억,
실수했을 때 비난받았던 장면,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한 외로움—
그 감정들이 내 아이의 행동을 보며 다시 올라오는 것입니다.
“나는 못했지만, 우리 아이만큼은 꼭 성공했으면…”
“나는 외로웠지만,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야지…”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은 때로는
아이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만들고,
아이보다 내 불안을 먼저 진정시키려는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심리적 자립이 먼저입니다.
나의 과거 감정을 돌봐주는 시간,
내 안의 어린 나에게 따뜻하게 말 건네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때 정말 속상했지. 혼자였던 네가 참 안쓰럽다. 이제 괜찮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과거의 감정을 수용하고 다독여줄 때,
우리는 자신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제야 아이의 실수와 실패 앞에서도
담대하고 흔들림 없는 어른으로 설 수 있습니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어 주는 부모.
실수해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당신의 흔들림 없는 사랑과 기다림,
그 자체가 아이에게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거예요.
오늘 하루, 아이가 실수하거나 실패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의 내 반응을 돌아보세요.
“나는 아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을까?”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들어주었을까?”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기보다 감정의 안전기지가 되어주었을까?”
그리고 한 문장이라도 좋습니다.
“괜찮아. 네가 힘들 때 엄마는 항상 여기 있어. 그리고 너에게는 이겨낼 힘이 있어.”
그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갈 용기의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은,
당신 자신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이랍니다.
“괜찮아. 예전의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의 나는, 더 단단해지고 있어.”
[다음화 예고]
실패를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힘, 그 회복탄력성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그리고 심리적 자립은 그 힘에 어떤 토대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