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 사는 / 살아갈 이야기

세종시가 좋은 이유

by 꿈강

30년 넘게 살아온 충북의 소도시를 떠나 이곳, 세종시로 2023년 7월에 이사했다. 벌써 4개월이 되었다. 이사한 가장 큰 까닭은 손녀딸 때문이다. 딸과 사위 모두 직장에 다니는 터라, 손녀딸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30년 넘게 살아온 곳을 떠나기가, 사실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그 소중하고 예쁜 손녀딸을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없었다. 고민 고민 끝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4개월쯤 살아 보니, 세종시가 참 좋다. 물론 나의 절대적 주관적인 시점의 평가이다.


세종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도서관'이다. 세종시에는 '국립세종도서관'과 '세종시립도서관'이 있고, 각 동의 행정복지센터마다에 '○○동도서관'이 있다. 국립세종도서관은 격주 월요일 휴무, 세종시립도서관은 매주 월요일 휴무, ○○동도서관은 토요일 또는 일요일 휴무이다. 마음만 먹으면 거의 일 년 365일 도서관에 갈 수 있다. 이게 뭐 그리 좋으냐고?


35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퇴직하고 세종에 왔다. 은퇴자의 가장 큰 딜레마는 뭘까? 아침에 눈을 뜨면 딱히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세종의 도서관은 이런 딜레마를 일거에 없애 주었다. 아홉 시 출근, 다섯 시 퇴근의 루틴을 싫증 날 때까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학교 대신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짬짬이 인터넷 검색하고 종이 신문도 보고……. 말년의 학교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해가 있을 수 있기에 사족(蛇足) 삼아 덧붙이면, 모든 고등학교 교사의 생활이 이렇게 평안하지는 않다. 퇴직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교사들만 그렇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또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교사 중에서도, 담임 맡기를 자청하여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하는 훌륭하고 멋진 교사들도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업에, 업무에, 학생 상담에, 학부모 민원 응대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세종 도서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국립세종도서관'이다. 왜 명칭이 '세종국립도서관'이 아니고 '국립세종도서관'인지 좀 궁금하다. '세종시립도서관'이 있으니, '세종국립도서관'이라고 해야 마땅할 듯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살짝,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다.


나의 두 번째 직장 또는 사무실 같은 국립세종도서관은 경관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내 지정석이다시피 한 곳에 앉으면 호수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동쪽을 향하고 있는지라 오전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다. 은은한 블라인드를 통해 호수 공원의 소나무들이 보인다.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 같다. 오후 한 시가 되면 어김없이 블라인드가 올라간다. 소나무와 호수공원의 호수 물과 공원 너머 아파트 건물들이 실사(實寫)로 보인다.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문득 고개 들면 눈의 피로가 사르르 풀린다. 자칫, 하염없이 넋 놓고 바라보게 되니 조심할 일이다.


도서관이니 만큼, 국립세종도서관은 실내가 완벽하게 쾌적하다. 온도와 습도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 알 도리는 없지만, 무더운 여름부터 추위가 느껴지는 요즈음까지 도서관 실내는 변함없이 쾌적, 그 자체이다. 교직생활 동안 근무했던 학교의 교무실 풍경이 떠오른다. 여름에 에어컨(이 교무실에 설치된 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을 틀면 너무 추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시원하다고 하니, 계속 틀어 놓을 수밖에. 냉방병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겨울에 온풍기를 틀면 너무 건조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려고 하면, 춥다는 사람이 꼭 있다. 감기는 숙명과도 같았다. 그런데 국립세종도서관은 온도와 습도가 완벽하게 쾌적하니, 이 아니 좋으랴. 아직 한겨울에 도서관에 와보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완벽하게 쾌적하리라 생각한다.


또 국립세종도서관에서는 국내에서 발간되는 거의 모든 일간지를, 종이 신문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요즈음은 대개 온라인에서 신문을 읽는다. 인쇄된 신문을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 역시 오랫동안 구독하던 종이 신문을 몇 해 전 끊었다. 그러나 종이 신문을 읽는 맛은 온라인에서 신문을 읽는 맛과 좀 다르다. 온라인에서 신문을 읽는 것은 고기를 대충 씹어 허겁지겁 먹을 때 느껴지는 맛이라면, 종이 신문을 읽는 맛은 고기를 꼭꼭 씹어 먹을 때 느껴지는 맛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똑같은 기사를 읽어도 종이 신문에서 읽는 쪽이 생각의 공간을 좀 더 넓혀주는 느낌이 있다. 물론 이런 느낌은 내 나이가 예순을 넘었기 때문에 드는 것일 터이다. 젊은 세대들은 나와 정반대의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국립세종도서관에서 종이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형편과 어떤 사건들의 이면을 이전, 종이 신문을 읽지 않던 때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도 국립세종도서관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퇴직하고 연금으로 생활하는 처지에 매일 점심을 사 먹는다면, 꽤 부담이 될 터이다. 요즈음 물가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그래서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데, 국립세종도서관에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용자에 대한 깨알 배려라 할 만하다. 모든 도서관에 그런 공간이 있지 않냐고? 그렇지는 않았다. 일전에 어떤 도서관에 갔더니 '도서관 내 음식 취식 금지'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도서관 밖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날 날씨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해서 날씨가 나빴다면 도시락 먹을 마땅한 곳이 없어 쫄쫄 굶을 뻔했다. 도서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도시락을 먹을 공간 정도는 제공해 주는 게 도서관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전에 살던 곳에는 국립세종도서관 같은 도서관이 없다. 물론 시립도서관은 있다. 그 시립도서관도 나쁘지 않았다. 가끔 그 시립도서관에 갈 때에는, 도서관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립세종도서관을 이용하고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 대열에 완전히 올라섰다고 한다. 전국 주요 도시에 국립세종도서관 같은 도서관이 들어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각 도시에서 경관이 제일 좋은 곳에 유려한 외관을 갖춘 도서관이 자리 잡는다면, 또 그 도서관이 그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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