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좋게 하려면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은퇴 후 삶터를 옮겼다. 30년 넘게 살아온 곳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고향은 아니지만 내 청춘을 불사른 곳을 떠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형편상 떠나야만 했다. 삶터를 떠나니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이루어지던 여러 만남들이 정리되었다. 딱 하나만 빼고.
나보다 네 살 많은 58년 개띠 형, 두 사람과 함께하는 만남이다. 살던 곳을 떠난 이후에도 이 만남이 깨지지 않고 지속하는 첫 번째 까닭은 매달 만남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돈 때문이다. 언젠가 함께 해외여행을 하자며 매달 제법 큰돈을 모아 왔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 되었고 그 덕분에 상당한 액수의 회비가 모였다. 우리끼리, 농담 비슷하게, 우리 모임을 '리치 클럽(Rich Club)'이라고 부르곤 한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데 내가 두 사람이 있는, 내가 떠나온 곳으로 간다. 내가 모임에 가는 여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그런 다음 버스를 타고 25분 정도 걸리는 기차역으로 향한다. 기차를 타면 모임이 있는, 내가 살던 도시까지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기차에서 내려 모임 장소까지 한 15분 정도 걸어서 간다. 모임 시간은 대략 두 시간 정도이다. 그 이상은 할 수가 없다. 내가 기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임 시간은 두 시간인데, 모임에 참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네 시간이다. 타고 걷는 데 드는 시간만 계산해서 그렇다. 차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넣어 계산하면 다섯 시간은 족히 되리라. 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앓느니 죽겠다'라고 말했다. 두 시간 모이려고 다섯 시간을 길거리에 버리는 게 마뜩지 않은 모양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가성비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즘 세상에 두 시간 모임을 위해 다섯 시간이나 이동하다니! 가성비를 따졌을 때 다섯 시간을 이동했으면 최소한 다섯 시간 이상 모임을 해야 마땅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하는 말일 터이다.
이렇게 모인 지가 일 년이 좀 넘었으니 벌써 열두 번 넘게 모였다. 두 시간 모임을 위해 다섯 시간을 들여왔다 갔다 하는 게 늘 흔쾌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무덥고 뜨거운 여름날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사라지게 만드는 건, 내가 달려가 만날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두 시간' 모임을 위한 '다섯 시간'은 충분히 들일 가치가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 알겠지만, 세 사람이 만나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나도 은퇴한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불과하니 말이다. 저녁 먹으며 반주 곁들이면서 이런저런 시시껍절한 잡담을 나눌 뿐이다. 딱히 정해진 주제 없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 보니 어떤 때는 몇 달 전에 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한 번씩 일 년 넘게 모임이 지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쭉 지속할 것이다. 셋이 모이면 한없이 좋기 때문이다. 즐겁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좋으면, 아니 정확하게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좋으면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모임에도 기꺼이 참여하게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좋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을 텐데, 내 생각에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기' 아닐까 싶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나빠지려야 나빠질 수가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까닭은 대개 자신의 생각이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그르다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이리라. 옳은 것을 앞세우고 그른 것을 뒤세우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사실이 늘 옳지는 않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그냥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뿐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느 덧 내 나이 예순넷. 젊었을 때에 비해 내 생각을 앞세우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혈기왕성했던 그때는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경우 내 생각은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소리 높여 내 생각을 앞세우는 일은 너무나도 흔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지금은, 같은 상황이 생겼을 경우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내 생각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일은 그리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젊었을 때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혹시 지금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삐걱대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있지 않은지 한번 돌아보라. 자신의 생각이 꼭 옳은지 한번 되새겨 보라. 그러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한결 부드러워질 터이다. 세상이 한층 평화로워질 터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기, 그리 어렵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하나의 점보다도 작은,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