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72> 2025. 08. 27.(수)

by 꿈강

지난 월요일, 나는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아내 혼자서 딸네 집으로 향했다. 아내가 딸네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손녀딸이 이미 깨어 있더란다. 딸내미가 아내에게, 손녀딸이 감기 때문에 밤에 잠을 설쳤다고 전해 주더란다. 아내가 손녀딸을 꼭 안으며 "순돌아, 잠 잘 못 잤어?"라고 했더니 "할머니, 나 감기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이 말을 전해 듣고 살며시 웃음이 났다. 다섯 살배기 손녀딸이 벌써 이렇게 과장법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숨도 못 잤다'라는 표현을 도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딸내미가 동화책을 많이 읽어 주니까, 그 책 어디에선가 그런 표현이 있지 않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딸내미가 출근하고 할머니와 단 둘이 남게 되자 손녀딸은, 아빠가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고 자랑하며 그 아이스크림을 꺼내와 만지작거렸단다. 아주 작은 크기의 아이스크림이었단다. 먹고 싶어 하는 눈치가 역력한지라, 아내가 손녀딸에게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했더니 손녀딸은 냉큼 두 개를 먹어 치웠단다.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말이다. 딸내미가 있었으면 밥을 먹기 전에는 간식을 못 먹게 했을 테니 손녀딸이 얼마나 행복해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하원할 때는 아내와 내가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손녀딸 감기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 병원에 데려갔다. 단골 소아과 병원이다. 작년에는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정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이다. 다섯 살이 되면 병치레를 덜 한다더니, 정말 그랬다. 참 오랜만에 병원에 들렀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병원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더니 차 댈 곳이 없다. 일단 손녀딸과 아내를 내려주었다. 아내가 손녀딸 손을 잡고 병원으로 올라가고 나는 지하 주차장을 세 바퀴나 빙빙 돌았다. 그래도 자리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갓길에 주차할 곳이 보였다. 서둘러 주차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올라갔더니 벌써 진료가 끝나 있었다. 아내의 전언에 따르면 손녀딸이 자기 증상을 의사 선생님께 또박또박 얘기했다고 한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녀딸 이야기를 듣고 난 의사 선생님이 손녀딸에게, 감기에 걸렸으니 아이스크림 같은 건 먹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단다. 진료를 마치고 딸네 집으로 갔더니, 딸내미가 이미 퇴근해 와 있었다.


다음은 다음날 딸내미가 아내에게 해 준 이야기이다. 전날 저녁, 나와 아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의 일이다.


딸내미가 손녀딸에게 "순돌아, 아빠가 사 온 아이스크림 먹을까?"라고 했더니 손녀딸은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아이스크림 먹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대답했단다. 우리 손녀딸은 모범생 기질이 여과 없이 드러난 장면이다. 우리 손녀딸은 선생님 말은 참 잘 듣는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러려면 손녀딸이 받은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듯하다. 선생님들의 말이란 대개 손녀딸이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못 하게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자기 욕구를 억제하고 선생님들의 말을 들으려는 손녀딸의 마음을 헤아릴 때마다 몹시 마음이 쓰인다.


딸내미는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던지라 손녀딸에게, 그럼 엄마만 아이스크림 먹어도 되냐고 물었단다. 손녀딸은 순순히 그러라고 했단다. 그래서 딸내미가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고 있는데 손녀딸이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단다. "엄마, 나 그거 혀로 핥아만 봐도 돼?"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안쓰럽기도 하고 신통방통하기도 하다. 그렇게 먹고 싶은데도 의사 선생님이 먹지 말라고 했다고 혀로만 핥겠다니!


이제 겨우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인 우리 손녀딸이 이런 말은 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아이스크림 먹겠다고 울며불며 떼를 썼을 법한데 말이다. 손녀딸의 모범생 디엔에이(DNA)가 작동했을 터이다. 이런 디엔에이(DNA)가 손녀딸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또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딸네 부부나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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