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고등학교에서의 학생 선택의 추억

by 꿈강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학생 선택'이라는 개념이 처음 들어온 때는 '7차 교육과정'이 고등학교에 적용된 2002년이라고 기억한다. 마침 그때 교육과정 관련 업무 담당자였다. 1학년은 '국민공통교육과정'으로 운영되어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고 2학년부터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운영되었다.


그런데 이 선택 중심 교육과정도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학생들의 선택권이 잘 보장된 듯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국 지리', '세계사', '정치' 중 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 보자. 학생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에 드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학생들의 선택권이 제대로 보장되었다고 할 터이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특정 과목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학교 측에서 '교육과정 운영상의 어려움'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이유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교육과정 운영상의 어려움'은 그 당시 그 학교의 교사 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일 그 학교에 지리 교사가 3명, 역사 교사가 2명, 일반 사회 교사가 1명 있는 상황이라면 한국 지리를 많이 선택하도록 유도한다는 말이다. 학생들은 학교 측의 유도에 생각보다 쉽게 넘어간다. 한국 지리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아진다.


학교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당시의 교사 구성을 가급적 바꾸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정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 일반 사회 교사를 충원하고 지리 교사를 다른 학교로 보내야 한다. 지리 교사가 다른 학교로 가는 것에 동의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교는 늘 그 당시 교사 수가 많은 과목을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선택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물론 이 사례를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에 적용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 당시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와 그 지역 내 4~5개 고등학교에는 예외 없이 적용할 수 있다. 작은 지역인지라 지역 내 학교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은 위에서 말한 상황보다는 좀 더 보장이 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바뀌지 않았다. 학생들의 완전하고 실질적인 선택권 보장보다는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상의 어려움'을 더 내세운다는 점에서 말이다.


학생들의 진로를 좌지우지할 과목 선택 문제도 이러할진대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은 흔히 무시되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가장 대표적이다. 교직에 첫발을 들인 1989년에서부터 2024년 퇴직할 때까지 내가 근무했던 고등학교에서는 '야간 자율학습'이 실시되었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 실시되는 자율적인 학습이므로 당연히 학생들의 희망을 받아 실시하였다. 다시 말해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선택권이 학생들에게 온전히 주어진 때는 2018년이 되어서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내가 근무한 고등학교와 그 지역 내 고등학교에 국한하는 이야기이다.


2018년 이전에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척했다. 자율학습 희망서를 받았다. 그러나 그건 제대로 된 희망서가 아니었다. 자율학습 희망서를 받자마자 학생들은 그 즉시 희망란에 동그라미를 친 다음 자기 서명과 학부모 서명을 해 제출했다. 쭈뼛거리며 자율학습 희망서 내기를 망설이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자율학습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나오면 학급 전체가 담임교사의 기나긴 훈계를 듣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 반 학생들 모두가 자율학습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부모 동의를 얻어 자율학습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텨 자율학습에 불참하는 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경우는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이렇듯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3년 내내 자신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절 자기 주도적 선택이나 결정을 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그런데도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교들에서는 학생들에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중요성을 인식했더라도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그런 경험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들의 지금 현재 모습도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학교 측의 인식이 쉽사리 바뀌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주도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게 하려면 학교 측의 인식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학교 측이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면서 학교 측의 인식이 바뀌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백년하청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4개월 정도 된 지금까지 새 정부의 이렇다 할 교육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은 완전히 뒤 순위로 밀린 형국이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으니 교육청이 움직일 까닭이 없고 교육청이 가만히 있는데 단위 학교가 발 벗고 나서 무언가를 새로운 시도를 꾀할 리가 없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데에는 교육의 힘이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고 한걸음 더 성장하려면 교육의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암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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