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 사는 / 살아갈 이야기

나의 퇴임식 '거부' 이야기

by 꿈강

충북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평교사로 35년 간 근무하고 퇴임한 뒤,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세종으로 이사했다. 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퇴임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퇴임 축하 모임을 하려는데, 참석할 수 있느냐고 했다.


마음속에서 갈등이 휘몰아쳤다. 내가 퇴임한 도시에서 모임을 하니, 무엇보다도 멀었다. 자동차로 2시간 걸린다. 또 차를 가지고 갔다가 그날 돌아오려면 술 한 모금도 할 수 없다. 차 몰고 가, 술 한잔하고 그곳에서 자고 다음 날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술 마시고 이젠 객지가 되어 버린 도시에서 혼자 자고 싶지 않았다.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겠으나, 기차 시간이 애매했다. 5시 반 모임이니, 모임은 7시 반이나 늦어야 8시쯤 끝날 것이다. 돌아오는 기차 시각은 10시 10분. 모임 후 2시간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래서 선뜻 답을 주지 못하고 망설였다.


머뭇머뭇하고 있는데, 재차 물었다. 참석할 수 있느냐고. 그 지역을 떠난 사람에게까지 전화해서, 퇴직을 축하해 주겠다는 곡진(曲盡)한 마음이 전해져 와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겠다고 했다. 술은 마시지 않고 저녁만 먹고 바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전화한 사람은 당연해 내가 술 한잔하고 그곳 어디에서 자고 다음 날 돌아가리라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굳이 미리 이야기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가서 대충 둘러대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모임 당일, 3시 반에 세종에서 출발했는데 중간중간 공사 구간이 많아 약 10여 분 늦게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모임 장소에 주차장이 따로 없어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이 이 모임의 주최자 격이고, 한 사람은 이번에 퇴임한 사람이었다. 또 한 명의 퇴임자가 당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없었다. 갑자기 치과 진료를 받아야 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네 명이 모임을 시작했다.


나를 뺀 나머지 세 명은 권커니 잣거니 하는데, 나는 맨송맨송한 상태에서 안주만 집어 먹자니 그 또한 고역이었다. 술자리에서 술을 먹지 않은 경우가 가물에 콩 나듯 하는지라, 견디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즐거운 척했다. 분위기를 깰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점점 그 자리에 있기가 버거워졌다. 나머지 세 사람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했냐고? 아니다. 5시 반에 모임 시작해서 7시 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그 세 사람은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지만 그들은 그렇게 취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대화의 주제였다.


모임 성격을 고려해 볼 때, 나와 또 다른 한 명의 퇴직 이후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와야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긴 처음에 모임 주최자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세종에서의 생활이 어떠냐고 묻기는 했다. 그런데 내가 세종에서의 생활에 대해 2~3분 정도 이야기했을 때쯤 나와 함께 초청된 퇴직자가 불쑥, 자신이 퇴직할 때 퇴직하는 학교(그와 나는 서로 다른 학교에서 퇴직했다.)에서 분에 넘치는 성대한 퇴임식을 마련해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 그의 퇴임식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20~30분 동안 계속되었다.


퇴직자의 퇴임식 이야기이니까, 모임 성격을 봤을 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성대한 퇴임식을 치른 사람의 퇴임식 이야기가 끝날 무렵,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나에게 퇴임식이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퇴임식을 하지 않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랬더니 퇴임식을 거행한 그 친구가,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학교에서 퇴임식을 해 주겠노라고 했는데 내가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렇다고, 내가 '거부'했다고 말하고 내 퇴임식 이야기는 그걸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대로 과연 내가 학교에서 해 주겠다고 한 퇴임식을 '거부'한 것인지, 좀 아리송하다.


그 친구가 말한 나의 퇴임식 '거부' 사건 전말은 이렇다.


나는 퇴임식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최대한 간단하게 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학교 측에서는 퇴임식을 하기를 원한다. 퇴임하는 사람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퇴임하는 사람이 퇴임식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와 자녀까지 퇴임식에 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까지 하면 퇴임식이 성대해진다. 이야기가 살짝 옆으로 빠졌다. 나의 퇴임식 거부 사건으로 돌아가자.


어느 날, 남교사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교무부장 교사가 내 옆으로 왔다. 간단하게나마 퇴임식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그러면서 이러저러하게 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그래서 내가, 뭐 그래도 좋고 아니면 퇴임식을 안 해도 좋다고 하며 술자리에 어울리는 얘기가 아니니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교무부장 교사가 알았다고 했다. 얼마 후, 친목회장을 맡고 있는 교사가 와서 퇴임식을 안 하겠다고 이야기했냐고 물었다. 교무부장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시 얼마 후, 우연히 교장을 복도에서 만났는데 교장 왈, 퇴임식을 안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노라고 했다. 교무부장과 나눈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 뒤, 교무부장이 그 이후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교장은 "그래요?"라고만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얼마 후, 친목회장 교사가 다시 와서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들과 이야기한 결과, 퇴임식은 하지 않고 전체 교직원이 참석하는 회식을 하기로 했단다. 날짜를 알려주며 참석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이미 그 지역을 떠난 이후였고 게다가 피치 못할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참석하고 싶어도 참석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어떤 형태의 퇴임식 없이, 같이 지내던 동료들과의 모임 자리도 없이 학교를 퇴직하고 그 지역을 떠나 세종으로 삶터를 옮겼다.


이것이 나의 퇴임식 '거부' 사건의 전말이다. 과연 나는 퇴임식을 거부한 것인가? 평소 퇴임식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퇴임식에 관한 내 생각을 드러낸 것은 술 먹다 말고 불쑥 던진 교무부장의 물음에 답한 것뿐이다. 학교 측에서 퇴임식을 할지 말지를 공식적으로 묻지 않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퇴임식을 '거부'한 적이 없는 것 아닐까? 그냥 자연스럽게 퇴임식을 하지 않고 퇴임한 것이다.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내가 바라던 대로, 아무런 공식 행사 없이 자연스럽게 퇴임했으니 말이다. 다만, 성대한 퇴임식을 하고 퇴임한 그 친구 말대로 내가 학교에서 제안한 퇴임식을 '거부'한 것인지는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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