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한두 살 더 먹을수록 안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사람을 많이 가리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리 심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은 상처도 곧잘 받고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날이 갈수록 만나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다. 그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피곤하게 사느니 외롭게 사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내 직업의 특성상 한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의 사람을 마주하던 일에도 진력이 나서 그런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회피하게 된다.
하지만 타지에 사는 외로운 외국인 처지가 되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서슴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역시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 적당히 만나는 지인의 생일 파티 조차도 가지 않을 내가 앤디의 친구의 친구의 생일파티를 쫓아간 것이다.
“지, 오늘은 내 친구 시모나의 페이스북 친구인 독일인 여행자의 생일인데, 같이 갈래?”
사실 말이 친구의 친구의 친구지, 그냥 모르는 사람 생일 파티인데, 앤디의 같이 가겠냐는 제안에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오케이를 외쳤다.
그리고 도착한 그 낯선 이의 생일 파티. 파티의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더더욱 낯설었다. 독일인 여행자 열댓 명이 그룹을 이뤄서 해안을 따라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하는 중에 생일 파티를 준비한 것이었는데, 타지에서 여는 생일파티이기에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온라인 친구들을 초대한 것이라 사실상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낯선 이들의 파티였다.
내가 마실 것은 내가 직접 사가야 하는 정 없는 서양식 문화에 맞춰 맥주 한 꾸러미를 들고 어색하게 파티가 열리는 곳에 도착한 나. 앤디와 앤디의 친구 시모나는 익숙하게 이 사람 저 사람과 말을 섞으며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고, 이런 식의 스탠딩 파티가 마냥 어색한 나 혼자만이 구석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하아... 괜히 쫓아왔어...’
역시나 사람이 살던 대로 살아야지 돼도 안 하게 스탠딩 파티에 와서는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후회를 하고 있을 때쯤, 여행자 일행 중 한 명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키가 아주 큰, 누가 봐도 게르만의 얼굴을 한 남자였다. 미소를 건네는 그는 마돈나의 치아처럼 앞니가 살짝 벌어진 훤칠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남들은 신나게 가무(歌舞)를 즐길 때, 누가 봐도 이 공간에서 혼자 적응하지 못 한 채 음주만 즐기고 있는 아웃사이더에게 손을 내밀어 준 구원자.
그 구원자의 이름은 마르셀이라고 했다. 그의 영어실력은 나만큼이나 형편없었으나 그럼에도 나와 마르셀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서너 살배기 꼬마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 속에서도 그들만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대로 같은 자리에 앉아 세 시간쯤 이야기를 나눴으려나. 파티는 제대로 즐기지도 못 한 채 처음 만난 독일인과 30분 분량의 잡담을 더듬거리는 말로 세 시간에 걸쳐 떠들던 신데렐라에게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 내일 해변 산책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려는 내게 마르셀이 나에게 동반 산책을 요청했다. 70km에 이르는 길고 긴 해안이 이어진 골드코스트에선 ‘차 한 잔 할래요?’ 대신 ‘해변 산책할래요?’라는 말이 통용되곤 한다. 뭐 해변 코앞에 사는데, 해변 산책이야 전혀 부담될 것 없으니 나는 선뜻 그의 요청에 응했다.
“좋아! 그럼 내일 서퍼스 파라다이스 간판 앞에서 보자!”
다음 날, 우리는 해변에서 다시 만났다. 해안을 따라 산책을 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식사도 함께 했다. 밥을 먹을 때는 덩치도 큰 청년이 밥을 어찌나 느리게 먹던지 밥 먹는 속도가 느린 걸로는 둘째가 아닌 첫째간다 해도 서러울 나와 속도가 비슷할 지경이었다. 알고 보니 마르셀은 내가 먹는 속도에 맞춰서 밥을 먹고 있던 것이었다. 이런 배려심 있는 청년이라니. 게다가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몸을 바들바들 떨며 상당히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누군가 보이는 이러한 호감의 싸인들에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생일파티 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마르셀과 많은 대화를 하기는 했으나 그는 나와 참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보인 호의가 고맙긴 해도 인간적으로는 큰 호기심이나 호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를 다시 만나서 알아 가고 싶어 하고, 속도를 맞춰가며 식사를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머무는 골드코스트에서의 일주일 동안 나를 더 많이 보고 싶다고 하며 적극적인 호의를 표하자 나 역시 기꺼이 나의 시간을 내주고 싶었다.
결국 마르셀과 나는 마르셀이 골드코스트에서 지내는 일주일간 몇 번을 더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골드코스트를 떠나는 날, 마지막 인사를 할 때 그는 나에게 물었다.
“한 달 후에 여행을 마치고 나면, 너를 보러 골드코스트를 다시 방문해도 될까?”
아니, 2000km가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그런 그에게 나는 여행이 끝나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나를 보러 오고 싶으면 그때는 놀러 오라고 했다. 알겠다는 답변을 남긴 후 마르셀은 그렇게 자신의 독일인 여행자 그룹과 함께 골드코스트를 떠났다.
그가 떠난 그날,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참으로 헛헛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외로움의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갑자기 나타나 그 외로움을 열심히 지워주던 와이퍼가 멈춰버린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생각보다 많이 외롭고 사람이 고픈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곁에 사람이 너무나 필요했던 것이다.
언제는 인간관계가 지친다며 많은 사람을 등지고 타국으로 떠나놓고선, 모르는 이의 생일 파티에서 만난 스쳐가는 인연의 빈자리에 울적함을 느끼는 아이러니란...
가끔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싫어하는 사람일까.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지치고 힘들다 해놓고선, 또다시 내 곁에 다가와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내가 참 어리석은 건지 기특한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이다.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나란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