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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탐험가 Jun 25. 2022

친구의 남자 친구가 한밤중에  내 방문을 노크하는 이유

말도  통하고 연고도 없는 곳에 무턱대고  가방 하나 들고 와서 ‘살겠다라고 결심한 나는 나의 플랫 메이트인 앤디에게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앤디 역시 내가 그녀의 집에서 지내기 시작할 때쯤 직장을 잃고 삶에 고군분투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자매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지냈다. 특히 생계와 비자 때문에 앤디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급기야는 남자 친구인 스캇까지 앤디의 속을 썩였다. 스캇 때문에 힘든 날이면 앤디는 그녀의 괴로운 감정을 나에게 토로하곤 했다. 날이 갈수록 앤디를 향한 스캇의 태도 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는 바람까지 피웠기 때문이다.


이에 앤디는 더없이 힘들어했고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나 역시 몹시 괴로웠다. 두 사람이 거실에서 언성 높이며 싸울 때면, 방에 아무리 꽁꽁 숨어 있어도 마치 내가 그 다툼의 당사자가 된 것처럼 불안하고 예민해져 갔다. 그리고 앤디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기에 마치 내가 이별을 겪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두 사람의 다툼이 잦아지던 어느 날 밤. 그날의 말다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심각해져 갔고 밖에선 스캇이 짐을 싸는 소리가 들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스캇에게 앤디는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혼자 방 안에서 와인을 홀짝이며 숨죽이고 있었다. 부모님의 싸움에 불안을 느끼는 꼬마처럼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 사람의 싸움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똑똑- ”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캇이었다. 집을 나가기 위해 짐을  챙긴 스캇이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노크를 했나 보다. 나는 방문을 열고 착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스캇, 너희 얘기하는 거 다 들렸어...

너 이제 떠나는 거지?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도 잘 지내길 바랄게."


나는 서양식 인사로서 그에게 포옹을 건네며 그의 등을 살짝 토닥였다. 그리고 이내 나의 포옹이 끝나자마자 스캇이 나를 보며 말했다.


지, 근데 말이야... 네가 지금 먹고 있는  와인 .

그거  거야. 지금 당장 돌려줄래?”


그가  방문을 두드린 이유는 마지막 인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컵을 거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하나까지 챙겨가는 야무진 인간 같으니라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난 당장에 와인을 원샷으로 마시고 그에게 컵을 돌려주었다.


마지막  하나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긴 스캇이 떠나고... 그날 , 앤디는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나에게 냉동실에 있는 나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비건용 아이스크림이 아니라서 앤디가 손도  대던 것이었는데. 나는 기꺼이 허락했고 그녀는 그날 나의 남은 아이스크림  개를 모조리 먹어 치웠다. 비건인 남자 친구랑 헤어지자마자 비건용이 아닌 일반 아이스크림부터 먹을 생각을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동안 앤디가 얼마나 많은  참으며 지냈는지가 느껴져 웃기면서도 슬펐다.


그리고 얼마 , 우리 집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노크 소리에 내가 문을 열어보니  앞엔 스캇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사과를 하려고 찾아온 것일까? 그러나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화해를 청하는 남자가 의례 들고 있어야  으로 추정되는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잘려있지 않은 커다란 통밀빵 하나였다. 문간에  스캇은  어깨너머로 앤디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였다. 그리곤  가지를  요청하였는데.


달링!! 우리 얘기  !! 근데 말이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빵을 자를 칼과 도마를 빌릴  있을까?”


마음씨 좋은 앤디는 기꺼이 그가 그녀의 부엌에서 빵을 자르고   있게 허락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급기야 겨울이라 야외에서 샤워를   없어서 그러니,  집에서 일주일에 샤워를  번만 하고 가면  되냐고 요청하였다. 일주일에 1 원은 지불하겠다면서.


앤디와 나는  이후로, 스캇을 ‘기생충 라고 불렀다. 그의 몸속에 실제로 기생충이 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는 캠핑 밴에 사는 낭만가 인척 하면서 기생할 숙주를 찾는 그런 놈이었기 때문이다. 앤디는 지금까지도 도대체 저런 놈이랑   빨리 헤어지지 못했는지 후회를 한다. 그리고  역시 앤디에게 그와  빨리 헤어지라고 설득시키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남의 연애에는 간섭하지 않는  맞지만, 친구 곁에 있는 놈이 진짜 아닌 놈이라면 역시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는  맞다.  사람이 화해를 요청할  꽃이 아닌 통밀빵을 들이미는 놈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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