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중 이런 씬이 있다. 나치들의 세계에 언더커버로 들어간 영국인, 그는 술 세 잔을 주문하며 익숙하게 손으로 숫자 ‘3’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 손가락 표현이 독일식 표현이 아닌 영국식 표현이어서 그가 스파이였다는 것이 들통나버린다. 독일식 표현은 엄지, 검지, 중지를 들어 보이는 것이고, 영국식 표현은 검지, 중지, 약지를 들어 올리는 것인데 영국인 스파이가 그만 무의식 중에 영국식 표현을 해버린 것이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것이 얼마나 인상 깊던지, 언젠가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숫자 3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호주에서 지내기 시작하면서 문득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종종 그들은 숫자 3을 손가락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물어보았다.
참고로 저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릿속은 이미 오염이 되어버려서 한국인은 숫자 3을 독일식으로 하는지, 영국식으로 하는지 가늠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무튼, 가장 먼저 나와 함께 사는 헝가리인 앤디, 그리고 함께 살았던 호주인 기생충씨에게 동시에 ‘숫자 3을 손가락으로 표현해 주세요’라고 요청했다. 앤디는 독일식으로, 기생충씨는 영국식으로 숫자 3을 표현하였다. 앤디는 그런 기생충씨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약지 손가락을 펴 올리면 새끼손가락이 아프고 불편하지 않냐면서 어떻게 3을 저런 식으로 표현하냐고 하였다.
자, 여기까진 영국식, 독일식뿐이지만 나에게 나름 충격적이었던 건 남미식 표현법이다. 콜롬비아 사람과 칠레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숫자 3을 표현해달라고 했더니 그들은 숫자 3을 중지, 약지, 새끼를 펴서 들어 보였다. 맙소사. 그건 숫자 3이 아니라 ‘오케이’ 혹은 ‘쩐’을 표현하는 거 아니야?
“이봐! 그건 오케이 혹은 돈이라는 뜻이잖아!!”
선택지가 두 개인 객관식 문제에 예상치 못한 주관식 답이 나와 당황한 나의 반응에 콜롬비아 친구가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것이 기억난다. 아니, 근데 숫자 3은 그렇게 표현한다고 쳐도 돈을 손가락으로 그렇게 표현하는 게 만국 공통이 아니었단 말이야??
영국식과 독일식 중에는 둘 중에 내가 무엇을 사용했었는지는 헷갈릴 정도로 둘 다 꽤나 익숙한데, 남미식은 정말이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숫자 3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어서 너무나 신선했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콜롬비아 친구가 나에게 살사 춤을 알려주면서 ‘원, 투, 쓰리’를 외치는데 글쎄 손가락을 새끼 – 약지 – 중지 순으로 들어 올리면서 숫자를 세고 있었던 것. 숫자를 셀 때조차도 그들은 새끼가 먼저였다.
그리고 손가락 숫자 표현의 또 하나의 다른 점이 있다. 앤디와 내가 각자 호주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를 계산할 때 나는 손을 다 편 상태에서 엄지부터 차례로 손가락을 접으며 세고 있는데 앤디는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부터 손가락을 펼쳐가며 세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의 방식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잔잔한 충격이란. 세계는 넓고 숫자 세는 방식마저 저마다 다름을 알게 된 것은 나에겐 꽤나 신선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소하지만 재밌는 문화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재채기를 할 때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호주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비염이 있어 종종 재채기를 하는 나를 볼 때면 앤디는 늘 나에게 “Bless you!”라고 말했다. 왜 갑자기 날 축복한다는 거지? 한국에선 기껏해야 ‘입 가리고 해.’ 정도의 반응이 따라오는 재채기 아니던가. 난 앤디에게 물었다.
“앤디, 근데 내가 재채기를 할 때마다 왜 날 축복한다고 하는 거야?”
“그럼 너는 재채기를 할 때 아무 말도 안 한단 말이야??”
응... 우린 안 해요. 우린 재채기할 때 침 튈까 봐 걱정하는 거 말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요.
나중에 호주인에게 들은 얘기로는, 사람이 재채기를 할 때면 우리의 영혼이 육체 밖으로 빠져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블레스 유!’라고 말해줌으로써 영혼이 다시 육체로 들어갈 수 있도록 상기시켜주는 것이라고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영적인 의미를 지닌, 굉장히 따뜻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채기와 관련한 재미있는 문화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헝가리에선 누군가가 말을 하고 있을 때 재채기가 나온다면 그 이야기를 ‘진실’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앤디가 만성 비염 환자인 내 앞에서 기생충씨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말할 때, 나의 연속적인 재채기가 앤디에게 그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모든 것은 사실이었고... 그렇게 나의 값싼 재채기는 나에겐 축복을, 그녀에겐 진실을 남겼다고 한다. 참으로 값싸지만 확실한 거짓말 탐지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