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 탐험가 Aug 08. 2022

30대에게 ‘의식주' 중 최고는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에 친구와 자취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친구의 회사 상사가 월세가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아파트에서 거주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의 정확한 경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월세로 큰돈을 지출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당시 상사분이 내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돈 벌어서 이런 데에 돈 쓰지 어디에 쓰겠니. 나이가 들수록 주거 환경이 정말 중요해.”


내가 20대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30대 중반을 넘어서다 보니 그때 친구의 상사분이 했던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20대 때에는 여행을 가서 숙소를 잡을 때 6-10인 호스텔 도미토리를 골랐다면, 지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호텔을 고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만의 공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다 보니, 사실은 골드코스트에서 앤디와 함께 사는 생활에서 슬슬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앤디와 나는 각자의 방을 사용하기 때문에 큰 애로사항은 없었지만, 문제는 앤디의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꾸준히 들여야만 하는 에어비앤비 손님들과 지내는 것이었다.   초반엔 경험 삼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기도 했지만, 그것이 장기화되면서부터는 지속적으로 나의 생활공간에 타인을 들이는 것이 불편하고 불안하였다.


게다가 앤디와 내가 어느새 너무나 막역한 사이가 되어버린 탓에 숙박 손님이 올 때면 나 역시 그들을 호스트처럼 챙기는 게 당연시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 이 정든 집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나는 앤디에게 이제는 내가 이사를 한 번 해야 할 때가 왔음을 논의하였고, 앤디는 아쉬워하면서도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출발을 위해 이사를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호주의 다른 대도시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골드코스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원룸 형태의 집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곳에서는 주로 방이 여러 개인 큰 집에서 셰어하우스의 형태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고는 한다. 방 2-3개의 집에 3-4명의 사람이 함께 사는 게 기본적이며, 가끔은 방이 5-6개인 집에서 열댓 명이 모여 살며 준가족 형태의 커뮤니티를 이루는 경우도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난 반년의 타향살이 동안 몹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집에서 충분히 많은 경험을 했기에 이번에 이사갈 집의 기준은 이와 같이 정했다.


‘플랫 메이트와 단 둘이 사는 조용한 집일 것. 벌레 없는 깨끗한 집일 것. 편의 시설과 교통이 좋을 것.’  


앤디와 살던 집은 바닷가가 코앞이며 번화가에 위치하여 교통이 아주 편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건물이 낡고 시설이 낙후된 데에다가 층수가 지층인 탓에 내 검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종종 출몰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새 집을 구할 때 환경의 쾌적함까지 조건에 더하다 보니, 아무리 방세 예산을 이전보다 높인다 하더라도 나의 정해진 주머니 사정 안에서 괜찮은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본격적으로 플랫 메이트를 구하는 사이트에 ‘최대한 같이 살고 싶게 생긴 사람’으로 보이게끔 사진과 글로 프로필을 꾸미고 이삿집 사냥에 나선 나. 70대의 연로한 호주 할머니의 집, 젊은 한국인 부부의 집, 번화가 정중앙에 위치한 원룸 등등. 여러 개의 집을 알아보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내 마음에 딱 드는 집을 찾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같이 웹사이트를 들락거리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하고 발품을 팔며 집을 알아보던 어느 날, 나는 안드레아라는 이름의 여자로부터 하나의 메시지를 받았다. 예의 바른 인사와 함께 시작된 메시지와 깔끔한 집안 내부 사진에 나는 순간적으로 ‘이 집이다!’ 하는 느낌을 받았고, 이에 일사천리로 약속을 잡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였다.


바닷가와 트램역 5분 거리, 건물 일부가 호텔로 사용되는 50여 층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 내 대형마트, 음식점, 병원 등등의 편의시설 위치, 수영장과 헬스장은 무료 이용이 가능한, ‘집주인과 단 둘이 사는’(가장 중요) 강변 뷰가 돋보이는 집이었다. 평생 살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말하면 한눈에 뿅 가 버렸는데, 가격은 타향살이하는 백수가 살기엔 살짝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나를 비롯하여 그녀의 집을 맘에 들어하는 몇 명의 사람이 더 있다 하여, 내가 맘에 든다 한들 안드레아가 나를 플랫 메이트로 최종 결정하지 않으면 그 집에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드레아는 나에게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 또또와 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사람이 플랫 메이트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했다. 음... 그렇다면... 나는 탈락이겠네...? 나는 평소에 개를 무척 무서워하는 탓에 그녀의 집에 들어설 때부터 나에게 달려드는 강아지 또또를 보며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무서워서 잔뜩 굳어있는 내 맘도 모른 채 또또는 꼬리를 흔들며 자꾸만 나에게 앞발을 치켜들어댔고, 나는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미간 위쪽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만져주며 애써 또또의 환대에 조금이라도 화답하려 노력하였다. 강아지 애호가가 1순위라면, 나는 아무래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다음 날 연락을 다시 준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안드레아에게서 온 연락... 결과는 내가 바로 그녀의 새로운 플랫 메이트로 확정되었다! 그녀가 나를 선택한 이유는 ‘또또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였다고 한다. 내가 개를 무서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또또가 나를 너무나 좋아한 것에 안심이 되어 그녀는 나와 플랫 메이트가 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아, 이런 사람 볼 줄 아는 인사이트 있는 강아지 같으니라고!


일이 풀리려면 이렇게 휙휙 단숨에 풀리는지, 나는 그녀에게 처음 문자를 받고 그녀의 집을 방문한 날로부터 이틀 후에 곧장 이사를 마쳤다. 27층에 위치한 강변의 석양 뷰가 돋보이는 새로운 나의 집. 예산을 높인 탓에 약간은 빠듯한 생활이 예상되지만 이사한 첫날 밤, 침대에 누운 나는 통유리로 된 창밖의 뷰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깊은 숙면에 빠져들었다. 역시 30대에게 '의식주’ 중 최고는 바로 ‘주(住)’이니라-를 되새기면서...

새 집에서 바라보는 석양, 역시 주(住)가 최고야...


이전 21화 아주 전형적이고 전형적이며 전형적인 아시안이란 무엇이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