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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탐험가 Aug 16. 2022

같지만 서로 다른, 오 나의 안드레아!


새로 이사한 집에서 새로운 플랫 메이트를 맞이했다. 사실 나의 엑스 플랫 메이트 앤디도 애칭이 앤디일 뿐 본디 이름은 안드레아인데, 나는 안드레아라는 이름의 그녀들과 살 운명인 것인지 나의 새로운 식구가 된 그녀의 이름 역시 안드레아였다. 하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안드레아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성향을 지녔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헝가리 출신의 앤디. 앤디는 새벽같이 일어나 비건식 아침 식사를 하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어느 날은 해변 산책을 어느 날은 바다 수영을 즐긴다. 집에는 항상 인센스나 향초가 켜져 있으며 알록달록한 히피 스타일 장신구가 가득하다. 날이 좋은 오후엔 누드 해변도 아닌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해변에서 톱 플리스 상태로 누워 일광욕을 즐긴다. 저녁엔  주황빛 스탠드와 여러 개의 향초로 집안을 은은히 밝힌 채 자기개발과 명상 관련 영상을 보다가 잠자리에 든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나른하고 몽환적인 노래를 부르는 시가렛 애프터 섹스. 남자 친구가 생기면 별자리 궁합이나 타로점을 보는 것이 특징.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 스타일의 멕시코 출신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아침 8시가 땡 치면 사과와 블루베리 등의 과일을 직접 간 생과일주스를 들고 출근을 한다. 퇴근은 매일 저녁 5시 40분, 단축 근무를 하는 금요일은 4시 40분. 가끔 머리를 하러 가거나 쇼핑을 하는 때를 제외하곤 알람 시계처럼 언제나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막 자가로 마련한 모던한 느낌의 아파트로 퇴근을 하면 반려견 또또를 산책시킨 후 냉동실에 가득한 즉석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간단히 마친다. 이후엔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다가 칼같이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록밴드 이매진 드래곤스. 남자 친구가 생기면 mbti를 분석하는 것이 특징.


서로 다른 성향의 두 사람과 지내는 것은 함께 하는 생활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앤디랑 살 때는 기본적으로 네 것 내 것에 대한 구분은 있지만 서로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식재료가 부족하면 서로의 것을 공유하기도 했지만, 안드레아는 갑자기 식재료가 부족하면 나에게 양파 반쪽도 빌려 사용하고 반드시 갚는다. 굳이 양파 하나 달걀 하나를 뭐 하러 갚느냐고 괜찮다 해도 꼭 빌려 사용한 것은 갚아주는 타입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두 사람과 사는 일은 흥미롭다. 이름이 같다는 것 외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기에, 같이 사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 같은 사람은 플랫 메이트에 따라 생활 습관도 아주 많이 달라졌다.


주로 음식을 집에서 해 먹고 야외 활동이 많은 앤디와 살 때에는 나 역시 많은 요리를 집에서 직접 해 먹으며 함께 해변에 가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고 자기개발 영상들을 감상했다면, 안드레아와 살 때는 좀 더 집순이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냉동 도시락을 사 먹는 그녀처럼 음식도 간편식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았고, 퇴근한 안드레아와 가끔 외식을 하거나 함께 디즈니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서로 아주 많이 다른 안드레아였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두 사람 다 나에겐 참 좋은 플랫 메이트였다는 것. 갖은 이유로 1년에 5-6번씩 이사를 한 친구 한 명을 보니 같이 사는 사람을 잘 만나는 것도 얼마나 큰 복이던지. 생각해보면 가족이랑 사는 것도 크고 작게 부딪힐 일이 많은데 완전한 남이랑 원만하게 잘 지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나 싶다.


안드레아들은 나의 타지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친구들이다. 혼자 살면서 모든 살림살이를 혼자 하는 현재, 가끔씩 나의 행동에서 그녀들에 의해서 습관화된 버릇들이 튀어나오곤 한다. 저녁에 한 설거지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건조대에서 완전히 다 정리하고 치워야 했던 안드레아의 버릇. 사용 후에 매번 개수대와 세면대의 물방울들을 모조리 닦아내던 앤디의 버릇들이 그렇다. 누군가와 같이 사는 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안드레아들과 살면서 생긴 이런 사소한 습관들이 그녀들을 떠오르게 한다.

안드레아들을 위한 나의 저녁 식사 서프라이즈

문득, 가끔씩 퇴근 후 귀가하는 안드레아들에게 대접할 저녁 식사를 만들어놓고 그녀들을 놀라게 해줄 생각에 두근두근 하던 날들이 생각난다. 밥상 차려놓고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처럼, 집에 돌아온 그녀들이 깜짝 서프라이즈에 기뻐하던 것에 즐거움을 느끼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날들이 꽤나 먼 추억이 되어버렸다.


같지만 서로 다른 두 명의 안드레아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플랫 메이트로 기억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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