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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매직 메이커

by 인생 탐험가


앤디는 늘 스스로를 ‘매직 메이커’라고 불렀다. 그녀는 항상 어떤 기운의 힘을 믿었고, 심심할 때면 유튜브로 타로 운세를 보거나 직접 카드를 펼쳐 스스로의 운명을 점치곤 했다.

“지, 너는 양자리니까 괜찮을 거야-.”

그녀는 종종 별자리 운세를 따르기도 하고, 간절히 염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믿기도 하였다. 그래서 가끔은 ‘유니버스’를 향해 기도를 하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순간에는 정말 일이 술술 풀리곤 했다. 지난번 모래밭 사이클링 사건처럼 말이다.

그런 앤디 곁에 있다 보니, 어느새 나도 그녀가 주장하는 ‘우주가 도와주는 마법론’에 조금씩 전염이 되었다. ‘내 인생의 마법 같은 시간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간절히 염원하면 모든 것은 이뤄진다고 믿게 되었다.


호주에서의 여행이 길어졌다. 앤디의 집에서 3주나 머문 후 돌아갈 시간이 되었지만, 나는 이곳에서의 치유와 평화를 이렇게 단기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턱대고 결심했다. 골드코스트에서 더 살아보기로. ‘그래, 나도 매직 메이커가 되어보는 거야!’


내가 이 결심을 할 때 즈음, 앤디는 옆방에 들어올 새 룸메이트를 찾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갈 시간을 코앞에 둔 내가 어느 날 말했다.

“앤디, 내가 네 룸메이트 하고 싶어. 내가 다시 돌아와서 여기서 사는 게 어떨까?”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 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나의 말에 앤디는 반색했다. 내가 그녀와 사는 건 언제든 환영이라며. 그렇게 한국 생활을 정리하기도 전에 이미 거주할 집이 확정된 나는 여행으로 가져갔던 짐은 몽땅 앤디의 집에 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휴직 중이던 직장에 퇴직 의사를 전했고, 비자를 준비하며 한 달 뒤 돌아갈 비행기 표를 끊었다. 짐을 그대로 두고 온 건 사실 “나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라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자 앤디에게 건네는 약속과도 같았다. 즉흥적인 것치곤 꽤나 단호한 결심에 엄마의 근심은 깊어졌지만, 나의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앤디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발레리오와 2주를 보냈다. 각별히 여기는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가자 앤디는 무척 적적해했고, 그때 내가 농담처럼 말했다.

“나 돌아갈 때까지 한 달 남았으니 그 사이에 남자친구 하나 만들어놔.”

“알겠어, 난 매직 메이커니까. 진정한 사랑(Geunine love)을 만나고 말겠어.”

그런데 정작 문제는 나였다. 그 당시, 코로나가 발발하면서 한국은 입국 불가 국가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출국을 2주 앞둔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혹시 내가 호주에 못 가게 되는 건 아닐까...’

결국 비행기 표를 바꾸기로 했다. 회사 업무를 정리하던 중, 퇴사일 바로 다음 날로 출국 일정을 앞당겼다. 모든 게 갑작스럽게 흘러갔지만, 앤디는 그 사실을 듣고 기뻐하며 외쳤다.

“잘했어 지! 아주 잘한 선택이야.”


그렇게 나는 퇴사 하루 만에 1년 치 짐을 싸 들고 다시 골드코스트로 돌아왔다. 불과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내가, 다음 날에는 타지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 셈이었다. 운명과 마법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결국 스스로 만들어내야 생기는 것이니까.


다시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앤디

그리고 드디어 돌아온 앤디의 집. 현관문을 열자 앤디가 두 팔을 벌려 달려왔다.

“웰컴백, 지영!”

활짝 웃는 그녀 뒤에는 한 남자가 보였다. 깡마른 상반신을 훌렁 벗은 채 긴 머리를 늘어뜨린 남자였다.

“지, 내 남자친구 스캇이야. 인사해!”

내가 내 인생의 매직을 만들어내는 동안, 앤디 역시 자기 방식대로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단 한 달 만에.


반가움과 기쁨 속에서 재회한 우리는 포옹을 나누었고, 앤디의 남자친구라는 스캇 역시 나를 끌어안았다. 꽤 오랫동안 나를 품에 안고서 나의 기운(?)을 느끼는 스캇, 긴 시간의 포옹이 어색해서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지, 당신의 아름다운 영혼이 느껴져.”

칭찬을 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묘한 불안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날 저녁, 스캇은 직접 요리를 해서 나와 앤디를 대접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스캇은 단시간이지만 앤디에게 푹 빠져 들었다고 했다. 스캇의 말이 진심인 것인지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그 순간 앤디는 진정한 사랑을 찾은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 이건 우주가 보내준 마법이야.”

그래, 이건 분명 마법이 맞았다. 일주일 전엔 존재조차도 몰랐던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마법이란 말인가. 소설이나 영화 속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은 늘 로맨틱하고 극적으로 느껴졌지만, 현실에서 ‘첫눈에 반했다’며 사귄 지 일주일 된 여자의 집에서 손님맞이를 하는 남자의 행동은 왠지 모를 의심을 낳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우주의 마법에 빠진 앤디의 눈엔 애정이 뚝뚝 넘쳐흘렀고, 그녀를 바라보는 나 혼자만이 묘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 남자는 앤디가 그토록 찾던 ‘Genuine person’이 맞는 것일까...? 예기치 않은 남자의 방문에 이 상황이 난감하기만 한데...

유니버스, 이번엔 너무 섣부르게 그녀의 염원을 들어준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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