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배를 채울 때보다는 마음을 채울 때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음식이 만들어낸 의미는 특정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때로는 기억 저편에 덮어두었던 추억을 되살려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 소풍날이면 엄마는 새벽부터 부엌에서 분주했다. 햇살이 막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김이 깔리고, 밥이 올려지고, 우엉과 단무지, 시금치와 계란지단이 차례대로 줄을 섰다. 그날만큼은 마치 부엌이 작은 김밥 공장 같았다. 산더미 같이 쌓인 김밥이 완성되면, 아침 식사로 김밥을 먹고, 소풍에 가서도 친구들과 김밥을 나눠먹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로 다시 김밥을 먹곤 했다. 소풍날은 사실상 나에게 친구, 가족들과 함께 김밥을 먹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김밥은 언제나 ‘함께할 때 더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된다. 누군가에게는 김밥이 그저 허기를 달래는 간편식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유대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인 것이다.
김밥이 주는 유대가 다시 되살아난 건 앤디와 함께 지내던 어느 날 덕분이었다. 늦은 저녁 일터에서 귀가를 한 앤디는 허기가 진 듯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곤 피곤한 얼굴로 참치캔을 따더니 커다란 김 한 장에 참치를 한 스푼 툭 얹어 대충 돌돌 말아먹기 시작했다.
‘김은 그렇게 먹는 게 아닌데...’
앤디의 ‘참치+김’ 조합을 보는 순간, 앤디에게 제대로 된 김밥의 맛을 보여주고픈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다음 날 나는 부엌을 차지하고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당근과 시금치를 볶고, 한인마트에서 절인 우엉과 단무지를 사 와서는 참기름으로 버무린 밥 위에 올렸다. 그렇게 완성된 김밥을 서프라이즈로 내밀자 앤디는 깜짝 놀라며 김밥 하나를 반으로 나눠 베어 물었다.
“앤디, 그건 그렇게 나눠서 먹으면 안 돼. 한 입에 먹어야 한다고.”
나의 조언대로 모든 재료를 한 입 가득 넣은 앤디, 고소하면서 짭조름한 온 재료의 풍미가 퍼지기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엔 놀람과 기쁨이 번지기 시작했다. 앤디는 김밥이 너무너무 맛있다며 김밥 한 줄을 앉은자리에서 해치웠다. 김밥을 맛본 후 보인 그녀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 이후로도 비빔밥, 잡채, 떡볶이, 불고기, 비빔국수 등 한국 음식을 만들 때마다 그녀와 함께 나누었고, 그녀는 그렇게 한식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앤디는 김밥의 맛에 푹 빠져 우리는 종종 부엌에서 함께 김밥을 만들고는 했다. 밥알이 손에 붙어 지저분해져도 웃음이 터지고, 속 재료가 다 튀어나와도 신이 나서 김밥을 말아댔다. 그렇게 완성된 김밥을 나눠 먹을 때마다 우리의 추억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다양한 한식을 접한 앤디도 자신의 음식을 내어주고 싶었던 걸까.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앤디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직접 만든 요리 하나를 내밀었다. 식탁 위에는 양배추를 볶아 넣은 파스타가 한 접시 놓여 있었다. 앤디가 어린 시절 자주 먹던 헝가리 가정식 요리였다. 한국으로 치면 간장국수쯤 되는 달콤하면서도 담백한 맛. 앤디는 그 음식을 먹으며 고향에 계신 엄마를 떠올렸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 중 하나라고 했다, 앤디의 이야기를 듣고 양배추 파스타를 맛보는 그 순간, 그녀의 추억 한 조각을 나눠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엄마와의 추억이 섞여 너무나 특별한 맛. 아마도 내가 김밥을 만들어 주었을 때 그녀가 느낀 것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지나고 보니, 우리가 나눴던 음식은 서로의 허기를 달래주는 것 이상의 위로와 애정의 표시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조금 울적한 날이면, 우리는 상대를 위해 요리를 해서 서프라이즈처럼 건네곤 했다. 나는 앤디를 위해 헝가리식 양배추 파스타를 만들었고, 그녀는 나를 위해 한식을 만들어주었다. 어느 날 내 방문을 똑똑 두드리고 직접 만든 한식을 내밀던 앤디가 생각난다. 그녀가 내민 접시엔 잡채가 있었다. 특이하게도 참기름 대신 코코넛오일이 들어가 있는. 사실 코코넛 향이 세서 특유의 잡채 맛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는 잡채를 받아 들었던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잡채스럽지 않으면서도 가장 특별한 잡채였다.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어갔던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서툴러도, 서로의 음식을 기꺼이 만들어주고 함께 나누면서 각자가 달리 살아온 시간과 공간을 단 번에 뛰어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평범한 음식들을 함께 하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맛있는 추억을 서로의 기억에 더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