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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그 이상의 친구

by 인생 탐험가


우정은 사랑보다 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은 쉽게 깨지지만 우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 하지만 나는 우정 역시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위해주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렇기에 우정도 종종 멀어지거나 아예 깨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에 대한 흥미가 사라져서, 혹은 시기와 질투가 개입해서. 사랑이 무너지는 이유가 대체로 전자라면, 우정은 후자에 더 가깝다. 친구가 나보다 잘나 보이는 것이 싫어서, 혹은 그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어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어떤 친구는 내가 그녀보다 못할 때에만 나를 곁에 두었다. 내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벌면 그녀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나는 그녀에게 진정한 친구라기보다 ‘내가 저 아이보다는 낫다’며 안도할 수 있는 비교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낯은 안 가려도 사람은 가리는 내 성향이 아마 이런 경험 속에서 더욱 심해졌는지도 모른다.


“지, 이 유산균 좀 먹어봐.”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 화면에 앤디가 보낸 쇼핑몰 링크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잔병치레가 잦은 나를 걱정하며 그녀가 유산균을 추천하는 메시지였다. 나는 이미 다른 제품을 먹고 있었기에 내가 이용하는 브랜드를 앤디에게 알려주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더 나은 유산균을 찾아주겠다며 짧은 토론을 벌였다. 대화를 마치고 문득 우리의 메시지를 쭉 되돌아보니, 대화창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서로를 향한 응원과 격려로 가득했다. 기쁜 일이 생기면 그녀는 나보다 더 기뻐했고, 내가 우울하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친구라면 당연히 축하하고 위로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그저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주변 친구들에게 감사해야만 한다. 누군가가 자기 에너지를 써가며 상대를 위로하고 응원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오로지 엄청난 애정과 관심이 뒷받침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특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질투 한 조각 없이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힘들 때든 기쁠 때든 늘 같은 마음으로 곁을 지켜준 내 친구 앤디가 정말 고마웠다. 우리의 대화창 속, 앤디가 보내준 각종 메시지들은 모두 그녀의 마음이 담긴 선물처럼 느껴졌다.


앤디는 타인을 소중히 대하는 방법을 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났다. 그녀는 나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가족, 연애, 건강처럼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숨김없이 터놓으며, 상대방이 도움을 얻기를 바랐다. 특히 내가 지치거나 아플 때면 그녀는 더더욱 아낌없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덕분에 나는 그녀의 삶의 궤적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기분이 가라앉은 어느 날, 나는 무심코 내뱉었다.

“내 연애는 온전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은 데다, 그마저도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자조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앤디는 담담히 자신의 연애사를 풀어놓았다. 누구를 만났고, 왜 사랑했고, 어떻게 갈등이 생겼고, 끝내 왜 헤어졌는지까지. 마치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차분히 풀어놓으며, 내가 그 안에서 작은 지혜를 얻기를 바랐다. 본인이 여유가 있을 때에도 그랬지만, 앤디는 심지어 힘든 시기에 처해있을 때에도 한결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인의 경험을 토대로 내 삶을 비추어보는 일은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한 훌륭한 길잡이다. 앤디는 언제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등대처럼 나를 비춰주었다. 그녀가 내 삶을 소중히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나를 돌봐줄 때마다 나 역시 앤디처럼, 기쁠 때든 슬플 때든 그녀 곁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가 나를 아껴준 만큼 나도 그를 아껴야 한다는 마음은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곁에 있어주겠다고 다짐하는 것- 이거 결혼 서약 때 하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반지 대신 유산균 링크를 주고받는 부부쯤 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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