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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선물일 뿐이지만

by 인생 탐험가

생일, 어버이날, 개업, 집들이, 송별회, 크리스마스 등등. 이것들의 공통점을 하나 찾자면 ‘선물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1년에 몇 번이고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날은 계속 찾아오지만, 정작 선물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상대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고, 가격도 적당해야 하며, 정성과 성의까지 보여야 하니까.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일은 꽤나 어렵다. 그래서 블로그나 유튜브에는 ‘20대 여자친구 선물’, ‘7살 조카 선물’, ‘50대 선생님 선물’처럼 나이와 관계를 세분화한 선물 추천 콘텐츠가 넘쳐난다.


나는 선물을 받는 것도 좋지만, 주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할지 고민하고, 쇼핑하며, 그 사람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는 그 시간이 좋다. 선물을 건네는 순간은 짧지만, 그전까지의 며칠은 설렘으로 채워진다. 그래서일까, 상대가 별것 아닌 선물에 기뻐하면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하다.


선물하는 걸 좋아하지만, 품목을 고르는 데엔 늘 어려움이 따르는데, 호주에서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더더욱 고민이 깊어졌다. 예산이 줄면, 아무래도 선택의 폭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로 내가 살던 주상복합 건물 1층에 있던 소품샵을 애용했다.

소품샵에는 인센스, 드림캐처, 액세서리 같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악몽을 자주 꾸던 어느 날, 나는 그 가게에서 작은 드림캐처를 사서 침대 머리맡에 걸어두었다. 드림캐처를 단 뒤로 꿈자리가 특별히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나쁜 꿈은 막고 좋은 꿈을 불러온다’는 상징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이 귀여웠다. 그때의 만족감 덕분인지, 그 이후엔 친구들에게도 드림캐처나 인센스를 종종 선물했다.


한 번은 앤디의 생일을 위해 인센스 홀더를 선물한 적이 있다. 소품샵에서는 포장을 해주지 않아, 나는 나무로 된 홀더를 종이에 정성껏 감싸 직접 포장했다. 완성된 포장은 썩 훌륭해 보이지는 보였다. 그래도 인센스를 좋아하는 앤디가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거라 믿으며 그녀의 집을 찾았다.

“이게 도대체 뭐야? 악세사리함인가?”
앤디는 포장을 뜯기도 전에 물건의 형태를 만지며 궁금해했다. 설렘이 가득한 얼굴을 보니 나까지 괜히 들떴다.
“어머! 인센스 홀더잖아! 나 이거 너무 갖고 싶었어. 고마워, 지!”
그녀는 한 달음에 라이터를 가져와 홀더에 인센스를 꽂고 향을 피웠다. 향도 좋고, 모양도 마음에 든다며 연신 기뻐했다. 고작 작은 인센스 홀더 하나일 뿐인데, 그녀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했다. 그런 앤디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마치 내가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말이다.


내가 건넨 소박한 선물이 오히려 큰 감사로 돌아온 일이 또 하나 있다. 이전에 앤디와 함께 살던 집에 에어비앤비 손님으로 왔던 데미안과의 재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호주 생활 1년쯤, 한국으로 돌아갈 시기를 고민하던 무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을 돌아보며 감사 인사를 보내던 중 데미안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메시지를 보냈을 때 마침 그는 골드코스트에 와 있었고,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만나기로 했다.


다시 만난 데미안은 덥수룩한 수염과 긴 머리를 제외하면 예전 그대로였다.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던 중, 그가 불쑥 물었다. “내 생일 파티에 올 수 있을까?” 파티는 마침 이틀 뒤였다. 그는 북부 브리즈번에 살고 있었기에 차가 없는 내게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될 게 분명했지만, ‘언제 또 호주인의 홈 파티에 가보겠나’ 싶어 흔쾌히 수락했다.


생일 파티 참석은 결정했으나 문제는 여정과 선물을 위한 예산이었다. 트램, 기차, 택시까지 타야 했기에 교통비만으로도 부담이 컸다. 때문에 비싼 생일 선물을 살 여유는 없었고, 결국 나의 선택은 드림캐처로 돌아왔다. 소품샵에 가니 종류는 많았지만, 예산 안에서 고를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다. 내 마음에 드는 건 터무니없이 비쌌다. 적당한 걸 고르고, 부족한 정성은 손 편지로 채우기로 했다. 계산을 하고 포장을 부탁했더니, 직원은 갱지 같은 종이봉투에 물건을 휙 담아 건넸다. 그 종이가 어찌나 초라해 보이던지, 이걸 들고 가는 게 맞을까 싶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아쉬운 대로 종이봉투를 집어 들고 가게를 나왔다.


선물을 사들고 기차역으로 가는 트램을 탔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물이 젖지 않게 가방을 꽁꽁 싸매 품에 안은 채 트램을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택시로 갈아탔다. 긴 여정이 끝날 즈음, 택시 안에서 꽁꽁 싸맸던 가방을 열고 선물을 확인했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가만히 있어도 초라한 포장종이는 빗물에 젖어 가방 한편에 찌그러져 있었다. ‘이걸 주기엔 너무 쪽팔려...’ 안 주느니만 못한 선물이 된 것만 같아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데미안의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자 데미안이 문을 열고 나를 반겼다.

“지! 어서 와! 와줘서 너무 고마워!”

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고민했다. ‘아... 이 선물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이미 종이봉투는 내 손에 들려 있었고, 그의 시선은 종이봉투에 닿아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데미안, 생일 축하해. 이건 그냥 작은 선물이야. 진짜 작아...”

젖고 봉투를 받아 든 그는 그 속에 든 선물을 확인하곤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뭐야? 와, 드림캐처잖아! 너무 예쁘다, 정말 고마워!”

그가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임을 알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그가 연기를 하며 나를 속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나의 선물은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그래서 그가 보여준 감사와 기쁨이 나에겐 큰 안도가 되었다.


파티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내가 찍은 사진들을 데미안에게 보냈다. 생일 초를 끄는 모습,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잠시 후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이런 사진들도 나에겐 큰 선물이야. 오늘 정말 고마워.”

메시지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더 도착했다. 그의 방 한편에 걸린 드림캐처 사진이었다. “나 이거 정말 맘에 들어!”라는 문구와 함께. 그 메시지는 하루 종일 선물 때문에 걱정하던 내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주었다. 비록 선물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는 선물을 준비해 가는 그 마음을 알아봐 준 것이다. '


데미안의 방에 걸린 나의 작은 선물


선물의 가치를 크기나 가격에 두지 않고 마음에 두는 친구들을 통해 나는 ‘진심에 고마워하는 법’을 배웠다. 이후로 나는 선물을 받을 때마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을 더 많이 느끼려 한다. 누군가 나를 떠올리며 잠시 멈추어 고민했을 그 순간이 고맙다. 선물이란, 결국 마음이 지나간 흔적이니까.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런 흔적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구매할 특별한 날이 곧 또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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