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도 더 나아가고 말테야.

[ep-5] 정면돌파

by Rick

대학병원 외래투어 후 주말 동안 난 집에 틀어박혀 위암 보만타입 4에 대한 각종 논문자료, 기사, 해외자료, 현재 이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해서 보았다.


해외에서는 가죽주머니병이라고 불리는 이 타입은 위 점막에 생기는 다른 타입의 암과는 다르게 위의 바깥쪽 근육층에서 발생하여 위 전체로 퍼진다. 그리고 이내 신축성이 좋은 위를 딱딱한 가죽주머니처럼 만들어 제 기능을 못하게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무엇보다 위벽 깊은 곳에 산발적인 세포형태로 자리 잡다 보니 내시경상 조직검사로 진단이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이 타입의 위암을 많이 겪어본 의사들 가운데는 내시경상 소견이 확실할 경우 조직검사상 암세포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선제적으로 위절제술을 시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나와있었다.

연이어 확인한 이화여대 논문자료에서는 복막 및 타 장기 전이가 동반된 보만타입 4(4기)의 경우 5년 생존율이 0%로 나와있었고 이는 왜 몇몇 의사들이 각종 소송이나 환자를 설득하는 과정을 무릅쓰고라도 선제적인 수술을 감행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Leather bottle stomach”

“Linitis Plastica”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 병의 국, 내외 논문자료를 10편 정도 찾아보고 분석해 보면서 왜 그동안 만났던 4명의 내과의의 소견이 저마다 차이가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새벽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이 되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공격적인 진단방법과 치료법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료를 보았던 세분의 의사 중 가장 비관적인 의견을 주셨던 건국대 이ㅇㅇ교수님을 한번 더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이 병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지금까지의 진단을 기준으로는 일단 위암 중에서는 가장 안 좋은 케이스라는 거군. 일단 전이가 있는지 없는지가 핵심이란 거고 음, 어쩌면 생각보다 서둘러야 할 수도 있겠어 “


컴컴한 서재에 홀로 앉아 스탠드 조명 하나에 의지하며 이미 보았던 논문을 보고 또 보며 나는 몇 번이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는 결국엔 길을 찾는다. 그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옳은 길인 것만 같았던 선택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틀린 길이었을 수도 있고 틀린 길로 끝나는 선택조차 과정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깨달음을 주니까.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문제를 피하지 않는 자세이다.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고 대처해 본 경험. 그것이 설사 고통스러운 순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꼬박 이틀에 걸쳐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국내외 논문을 정독했고 짙은 어둠 속에서도 지금 내 상태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아마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알아차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맞이한 아침에 내 체중은 5월 건강검진 대비 7kg가 빠져 있었다.

아침에 눈을 비비며 깬 해인이는 지난밤의 내 상황을 바로 이해했고 날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하하 몸무게가 83kg까지 빠져버렸어”라고 애써 털털한 웃음을 짓는 나를 해인이는 아무 말 없이 꼭 끌어안았고 이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언제 이렇게 허리가 얇아 진거야…. 괜찮을 거야. 아무것도 아닐 거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


“알겠어. 미안해. 그러니까 울지 마. “


이른 아침, 우린 서로를 끌어안고 쌔근쌔근 잠든 딸아이를 보며 다시 한번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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