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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나 Oct 19. 2024

너와 나 우리의 '학습둥지 프로젝트'(13)

항상 성공할 순 없다.

" 언니 힘들어요."

혜영 씨와 간만의 통화다. 힘들다는 내색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쩐 일로 힘들단 표현을 한다.

" 왜? 뭐가 잘 안 되니?"


농촌신활력플러스 사업에서 혜영 씨를 중심으로 구성된 팀이 우수상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영어로 배우는 숲체험을 테마로 계획서를 내고 교육을 듣고 발표회를 마쳤다. 나뿐 아니라 함께 수업을 함께 하는 엄마들은 발표회 당일 참석해서 설문조사와 응원을 함께 했다. 지금 쯤이면 활동준비가 한창이거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시점인데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기 너머 혜영이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다.


" 아무래도 프로젝트를 그만둘까 봐요. 진행할 사람이 없어요."

" 진행할 사람이 없다고? "

" 네, 진행을 추진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다음 단계로 가려면 교육이수도 더 해야 하고.. 근데 일정이 맞지도 않고 의견도 안 맞아서 모임도 안될 거 같아요."


처음부터 쉽지 않은 계획이었다.

온전히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선 미션에 맞춰 교육과정도 이수해야 하고 성과물도 내놓아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생활인이었기에 프로젝트에만 매달려 있을 순 없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한 들 구성원들의 노고 없인 어떤 일도 마무리될 수 없다. 어선생님 역시 더 이상의 진행에 난감함을 표하셨다. 각자 원하는 바가 다르고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다. 단지 아이들을 위한 마음만은 같더라도.


" 혜영 씨 힘들면 그만둬.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모두가 같은 마음 일 수도 없고 뜻이 맞아도 변수가 생길 때마다 흔들리는 게 계획인데 이런 식으로 무리하게 끌고 간 들 마무리가 힘들다면 이쯤에서 접는 게 맞을 거라 봐."


항상 모든 것이 뜻대로, 의지대로,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면 최고의 수겠지만 그러긴 쉽지 않다. 대부분은 실패이며 작은 결실이라도 맺기 위해선 백번이고 천 번이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게 모든 일의 순리다.

 

" 네 언니,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면 용기겠죠. 그래도 저는 참 아쉬움이 많은 기회였어요. 잘해보고 싶었는데 맘처럼 쉽지가 않아요. 그래도 제가 이번 프로젝트 참여하면서 교육비가 조금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 걸로 영어 숲체험은 어려워도 정말 숲해설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모셔서 숲에서 놀이행사는 해 볼까 해요. 그건 큰 돈이 들지도 않고 제가 받는 교육비를 아이들이랑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부탁을 드렸더니 숲체험 선생님께서 흔쾌히 수락하셔서 그 걸로 대처할까 싶어요. 언니네 아이들도 함께 배우러 올 수 있죠?"


혜영 씨는 마지막까지 본인 앞으로 나온 교육비를 아이들을 위해 쓰겠단 생각이었다. 혜영이도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각자 직업과 역할은 다르지만 주머니를 털든 마음을 털든 무엇이든 내어주고 싶은 그저 그런 엄마일 뿐이다.





학습둥지 프로젝트 역시 그렇다. 원하는 바 대로 뜻하는 바 대로 순풍에 돛 단 듯 흘러만 갔다면 이렇게 글을 쓰며 푸념을 하지도 기록에 남기고 말겠다 부르르 떨며 다짐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기록을 아니 이 눈물의 보고서를 쓰고야 말겠다 결심한 이유 역시 분명 순탄치 않은 과정과 미션들이 그간의 이야기에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내 아이를 위해 동네 꼬마들의 영혼을 모두 살찌우겠다 결심은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아이조차도 제대로 배우고 익히고 커가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단양도서관에서 수업은 무척 소란스럽긴 해도 매주 빠짐없이 진행됐다. 1시간 30분가량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연령이 어린아이들은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들락거렸다. 시끄럽고 산만하고 어지럽히고..

처음 수업에 동참하러 온 아이 입장에선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 신나는 음악이 나올 때만 격렬히 춤을 추거나 지루한 기색이 조금만 보일 때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강의실을 오락가락했다. 그때마다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관리자의 눈총은 피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통유리로 관찰이 가능한 강의실 구조로 인해 엄마들이 굳이 강의실에서 아이들을 단속하며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엄마들은 교실 밖 소파에서 노닥거리며 아이들을 지켜봤는데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엄마의 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근심도 늘어만 갔다.

 어떤 엄마는 아이를 맡겨두고 시장을 다녀오기도 했고 아이가 떠들어도 엄마들과 통성명에 바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사실 육아라는 것이 보통 고된 노동이 아니니 이렇게라도 나와 아이를 맡겨두고 지친 하루를 교육이란 미명 하에 본인을 위한 시간으로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학원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과는 분명 다른 교육동아리인데 이 작은 단위체를 단순히 보육으로 이용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결국 관리자의 호출을 받게 된다. 그건 이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결과였겠지만 지금도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 이번 달까지만 강의실을 사용하시는 거죠? 7월에 올누림센터가 완공되면 그쪽으로 옮기실 계획 맞으시죠?"

"아직 정확히 정한 건 아닙니다. 여기 시설도 좋고 아이들도 늘어서 여길 계속 이용했으면 하는데 그건 힘들까요?"

" 네 죄송합니다만 여기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오시고.. 또 너무 소란스럽단 민원도 자꾸 들어와서요. 아무래도 이번 달까지만 이용하시고 정리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정말 속으로 악담을 퍼부었다.


'이 동네엔 고작 애들 몇 뿐이고 노인들만 가득이니 조용한 어른들이나 이 좋은 시설 실컷 써라. 몇 년 내로 이곳에 어린애 소리 하나 안 들릴 테니 경로당으로 써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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