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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나 Oct 26. 2024

너와 나 우리의 '학습둥지 프로젝트'(14)

재능기부라 부르는 노동착취

항상 선생님의 노고와 열정에 마음이 쓰인다.

수업을 시작한 지 1여 년이 되어가지만 선생님께 드리는 수고비는 단 1원도 없었다.

수업마다 드리는 따뜻한 차 한잔이  그저 현물서비스라면 서비스일까?

가끔 명절이 다가오면 홍삼차나 작은 선물세트만 하나씩 챙겨드렸다. 나 역시 오픈형 수업에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멤버가 아니라면  굳이 함께 선물이라도 드리자 제안할 상황은 아니라 판단해 가끔 내 사비를 털어 작은 선물 하나 전해드리는 걸로 마음을 전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활동을 한다. 그것이 자발적일 수있고 자발적인 수있겠지만 입장에선 루틴화된 일상을 사는 직장인으로선 굳이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것이 아니라면 그저 집에서 다리 뻗고 티비나 보고 낮잠이나 자고픈 욕망의 전부다.

그런데 1여 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조차 예순을 넘은 어르신은 쉬지도 않고 보따리 몇 개씩을 짊어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겠다 다니신다. 도대체 저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적잖이 있다. 재능기부라 부르지만 사실은 노임은 1도 주지 못하는 노동착취라 부르는 것이 나는 맞다고 본다. 그 노동착취의 주범은 나와 아이들이며 주범들의 수 역시 많진 않아도 손 만 뻗으면 함께 하겠다 몰려들 녀석들 역시 수 십은 될 듯하다.  재능기부라 부르는 노동착취에 대한 나의 주장은 둘째 딸을 아침마다 등원시킬 때마다 인사를 나누는 선녀원장님께도 말씀을 드린 적이 분명히 있다. 우리야 그저 감사의 마음으로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항상 선생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파지직 쓰린 그런 느낌이 도사린다 말씀을 드렸었다.




여느 날처럼 둘째 아이 아침 등원을 하던 오전. 선녀 원장님이 활짝 웃으며 반기신다.


"재현어머니,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이요????"


" 어선생님 영어 수업을 단양군에서 정식 프로그램으로 인정을 해 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6세 7세 일주일에 각 1회 두 번 정규 수업을 편성해 줬어요. 기존엔 저희 자체에서 프로그램으로 편성했지만 이제 정규 프로그램으로 인정을 받았으니 강의료도 정식으로 나오게 됐고요. 그리고 단양에 있는 다른 어린이집들도 영어 수업을 편성하신다는군요. 그리고 제천 쪽에서도 저희 측에 어 선생님 수업 강의 벤치마킹하신다고 참관도 하고 가셨어요.. 아마 그쪽도 어린이 영어 수업을 편성하실 생각이시래요."


재능기부라 불리는 노동착취를 원장님이 해결해 주셨다. 영어 바자회를 열던 날, 수많은 손님들이 왔었다. 정말 지역에 내놓으라는 명사들이 모두 모였었다. 그때부터 이 모든 걸 준비했으리라 난 생각한다. 아이들이 단지 놀이만으로 성장할 순 없다는 것을  돈만 있다면 양질의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도시의 아이들과 달리 돈이 있어도 양질의 사교육 자체를 접할 수 없는 지역적 특색을 어떤 식으로든 돕고 싶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끔 누군가가 질투 어린 혹은 악의적인 말투로 나에게 말을 던진 적이 몇 번 있다.

" 단양어린이집 원장님은 다음에 군의원이라도 나올 모양이셔. 어린이집 원장님 치곤 너무 열성적으로 활동을 하시는 거 같아? "

그때마다 나의 답변은 일관적이다.

" 나오시면 뽑으면 되지. 뭐가 나빠? 욕망이 넘치든 열성이 넘치든 열심히 하겠다는 게 뭐가 나빠? 단양에 노인과 어른만 있냐? 애들 문제 생각하는 사람 하나쯤 있어야지. 노인만 사냐? 어른만 사냐? 애들 문제 생각 안 하면 이 작은 시골에 발전이 있겠냐? 욕망이든 열성이든 열정이든 내 자식에게 도움만 된다면 난 뽑을 거야. 나가라고 응원이라도 했으면 좋겠네."


7월이 다가온다.

6월 말까지 이용하기로 한 단양도서관에서 마지막 수업이 남았다. 서운함과 속상함은 미뤄두고 당장 7월부터 새로운 강의실 확보가 시급하다. 올누림이야 개관하겠지만 새로 생긴 깔끔하고 멋진 강의실을 온 동네 빌런에게 굳이 내어줄 의향이 있을까? 앞이 막막하다. 내가 도서관 팀장도 아니고 도서관 담당자도 아니니 부탁한 들 머리를 조아린들 거절하면 그만이다. 사실 나는 이미 공무원계에 빌런이다. 조직을 아는 사람이고 조직의 구성원이다 보니 앞에서 거절의 뜻을 전하질 못하고 에둘러 말하거나 신규직원을 통해 거절을 통보했다. 그나마 인사를 나누고 웃는 낯으로 뵙던 분들을 볼 면목이 없어졌다. 껄끄럽고 불편했다. 그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내 새끼와 아이들을 선택하느냐 밥벌이하는 조직의 유대관계를 선택하느냐 고민에 놓이지만 항상 전자를 선택했다. 직장은 떠나면 그만이고 가족은 버릴 수 없으니 부모로서 위치가 나에게 더 소중하단 생각이었다.

아이들을 끌고 다니면서 벌써 3번째 이동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날 보면서 나 역시 나에게 참 진상이다.라고 푸념하곤 했다. 단양도서관 담당자에게 이제 강의실을 이용할 수 없다. 아이들을 제발 조용히 시켜 달라는 통보를 받던 날을 가끔 되새긴다.

정말 그날 나는 너무도 화가 나서 담당자에게 한 톤 높은 언성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그 순간에도 최근에 온 꼬마 빌런 삼 형제는 까르륵 웃으며 강의실 문을 열고 닫으며 뛰었다. 정수기 물을 쏟으면서 화장실로 가겠다 징징거렸다. 당시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어린아이들에게 정말 혼을 내겠다 으름장을 놓았다. 옆에 있던 엄마가 당황했다.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난리법석 속에 나와 담당자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었다. 이런 모든 상황이 나에게 너무나 불리했다. 그냥 이 모든 걸 엎어버리고 싶었다. 냅따 그만두고 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난 교양인이자 약자이니 그저 죄송하다로 마무리하며 6월  마지막 주 월요일 수업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겠다 말하며 몸을 돌렸다. 남은 시간 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강의실로 터덜 터널 들어가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이 망할 수업을 확 때려치워버렸으면 좋겠다 중얼중얼 중얼


그때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목청 높여 화면을 보며 대답했다.

" I like apple, l like orange, I like egg, l like banana...."

모든 화면 장면 하나하나마다 영어 단어를 줄줄 크게 목청껏 외쳤다.


이 녀석들 언제 이렇게 배웠대? 맨날 장난만 치고 뛰어만 다니더니... 언제 이렇게 배웠대?

울컥한다. 아이들 앞에서 눈물 흘릴 순 없으니 꿀꺽 킨다.


에휴,,, 다시 구해야겠다. 7월부터 사용할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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