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를 열어봐야 알 수 있다

by 신세종

요즘은 홀로그램우주라던가 양자 역학 책을 찾아보곤하는데.

슈레딩거의 고양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상자에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상자를 열지 않은 상태에서는 확률로만 존재하게된다고


그렇기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으로 모든 수식을 열거한다는 개념인데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오지않은 미래는

좋은일도 싫은일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가정을 해야겠다.

사실 나도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찾아오기는 매한가지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


어쩌면 우리는 미래의 일을 너무 단정적으로 생각했던것은 아니었나 싶다

미래라는건 결정된것이 아닌데.


이미 모든게 결정되었다고..

거기서 끝내버리면 너무 아쉬운건 아닐까..


슈레딩거의 고양이처럼 뚜겅을 열어보기전엔 아무도 모른다.

뚜껑을 영원히 열지않는다면

고양이는 죽어있는상태와 살아있는 중첩상태에 놓이게된다.


결국 다가 오지않은 미래

뚜겅이 열리지않은 상자속 고양이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미래를 너무 걱정하진말자.


두려워하지말자.



그런데 양자역학책을 처음보면 나오는 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게 양자역학의 시작을 알리는 근간을 이루는 개념인데.


사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을 극도로 반대했던 학자였다는거.

그 사람이 양자역학을 공격하려고 만든개념이 사실 현대 물리학의 근간인 양자역학의 기본이 되어버린것을.


입자상태면서 파동으로나타나는 특이한 중첩상태.

죽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고양이.


사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전부알지 못하면서 아는척했던것일지도 몰라.


사실 어떤면에서는 기회를 보고도 놓아버린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기회인줄알았는데 아니었을 수도 있지.


모든건 중첩상태로 있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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