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사조를 보다보면
갑자기 하늘에서 뚝떨어진것이아니라
그 앞에 있던 사상적 구조에 대한 회의 혹은 반작용으로 태어나게 된다.
낭만주의가 태어나게 된 계기를 살펴보면
이성주의의 반작용으로 태어나게된다.
모든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면 천국으로 갈것이라며
이성주의를 숭배했지만
결국 그렇지 못하다는것을 깨닫게된다
특히나 이성주의 계몽주의 합리주의는 인간의 감정을 굉장히 폄하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게되었고
인감의 감정은 불규칙하고 조절하기 어렵기에
학문이나 문예사조 예술의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리게
되지만
사실 인간에게 감정은 굉장히 소중하기에
이내 합리주의는 무너지게되고
그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꽃을 피우게된다.
괴테의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면
말도안되는 이미 연인이 있는 로테라는 여자를 좋아하는 베르테르가 나온다.
로테에게는 매우 이성적이고 예의바르고 합리적인 연인 알베르토가 옆에있다
그에 반하면 베르테르의 사랑은 자신의 인생 모두를 바치고 싶어하며
사랑앞에 모든것이 무력화되는 그런 낭만주의 처럼 포현된다.
마치 이성적인것에 대한 반발로 낭만이 필요하다고 괴테가 속삭이는 듯하다
이성주의 속에서 차갑고 기계화되었고 이성이라는 잘짜여진 길에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감정의 끓어오름이 필요하고
그런것에서 에너지를 받게되기에
사람들도 그것에 동의하며 이성주의 문예사조를 무너뜨리고
낭만주의를 예찬하게된다.
단테가 평생을 사랑했던 베아트리체를 단두번만났었다
9살때 베키오다리에서 한번 보고 사랑에 빠지고
18살때 두번 본게 끝이다.
어쩌면 단테는 단 두번의 만남을
마음속 깊숙이 갖고
현재도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은 서양에서 첫사랑의 아이콘처럼 사용되고있다
특히나 마음속에 평생을 두고 사랑하는 인물로 수도 없이 많이 인용된다.
그렇게 낭만주의는 이 두사람으로 표현되는 그 어떤
닿고싶어도 닿을수없는 감정같은 것들로 수도 없이 묘사된다
이루고 싶어도 이룰 수 없음에서 오는 아쉬움
돌이킬수 없기에 더 안타까운 마음.
요즘같은 차갑고 척박하고 다들 마음한구석 여유조차 없는 삶속에
이런낭만을 다들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이미 수식화된 삶과 이렇게이렇게하고 저렇게저렇게 하며 살아야
남들에게 비웃음 받지 않고 폄하되지 않게 살아야되는거 아닌가하며
스스로 감정이란것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며
뒤로 미뤄둔채
살아가지만
마음한켠에
그렇게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따뜻한 낭만을 품고 살아가고 있기에
다들 아직도 로미오와 줄리엣, 이몽룡과 성춘향의 이야기를 입에 오르내리며
예찬하는것은 아닌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