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 레빈
사랑을 위해 왕좌를 포기했던 사람들
에드워드 8세, 선화공주, 낙랑공주,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소설 만화 엠마의 리처드 존스- 윌리엄 존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평강공주, 슈렉과 피오나 공주...
솔직히 더 세라면 세겠는데
오늘 다룰 소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도 그러하다.
카레니나
요즘 들어 예전에 나의 처음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지금은 나의 첫사랑에 대한 대상의 얼굴조차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사랑을 처음 느낀 나의 모습은 뇌리에 가득하다
생애 처음 느끼는 설렘, 즐거움, 두근거림, 사랑이라는 감정의 회로가 처음 깔리는 느낌이라는 것은
아직 생생히 온전히 마음 한 켠에 남아있음을 느낀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때 좋아했던 첫사랑으로서의 이성의 대상은 머릿속에서 지워졌고
아니 더 솔직하게말하면 지금 현 시점에 그 첫사랑의 대상을 보면
내가 왜 얘를좋아햇지 완전 별론데
이럴가능성이 매우높고
그때 그렇게 장작불처럼 타올랐던 나의 모습을 내가 좋아햇던것이다
나의 모든걸 내던지던 내모습을 스스로 낭만이라 칭하며 그것을 이상화 하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한번 보며 그러한 감정이 생각나곤 한다.
안나 카레니나가 결정한 선택은 사랑이었던 것이었을까.
러시아 거장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 이름이자 소설 주인공 이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전, 전우치전처럼 소설의 제목이 주인공 이름인 셈이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황과 차가운 비판이 담겨있기도 하다.
반대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고찰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소설 속 인물들은 치밀하게 묘사되어있고.(심지어 등장인물의 사냥개의 마음까지 묘사할 만큼 인물들의 내면 심리까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전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묘사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현재 현대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매우 유사하다.
책을 보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이야기한다면
안나라는 러시아 사교계 여성이 결혼까지 한 유부녀이지만 갑작스레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게 분륜 을 저지르는 이야기이다.(지극히 간단하게..)
내가 그렇다면 불륜을 옹호하고, 결혼을 파탄으로 이끌 그 어떤 것을 숭배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보다 앞서 소설 속 톨스토이가 깔아 둔 포석을 바라봐야 한다.
안나 카르니나는 원래 남편을 진정 사랑하여 결혼했던 것일까?!
순수한 사랑보다 부수적인 조건을 따지면서 결혼했던 것일까?!
그러한 부수적인 조건이 훨씬 더 절대적이어서 결혼했던 것일까?!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결혼이라는 것이 당시에 존재했던 것일까?!
자신의 선택이 아닌 수많은 타인의 강요된 선택으로 결혼했던 것일까?!
안나의 결혼에는 이런 수많은 의문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1800년도의 러시아 사교계에서만 통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인류 역사상 그보다 훨씬 더 과거 조선시대 고려시대
아니 현재의 우리의 삶에도
나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시선, 타인들의 말하지 않는 강요에 의하여 결혼 혹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다시 한번 나를 정비하곤 한다.
사교계에서 안나는 이단적이었다.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 것에 대해 주변의 사교계 인물들은 그를 험담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그건 비단 현재의 삶에서도 통용된다.
자신과 다른 가치관에 대해 맹목적 비판과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풋곤한다.
그것을 전쟁터의 전적비처럼 자신의 가슴팍에다가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을 품어주는 것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칭기즈칸이 정말 위대한 이유가 몽골리안의 기마술, 시력, 전투력보다도
다문화에 대한 포용력이라고 생각한다. 칭기즈칸은 전 세계를 제패하고 다문화를 가장 먼저 (미국보다 먼저)
포용 한나라다. 수도 카라코룸에 식민 지배하고 있는 나라의 종교사원을 세우도록 허락해준다.
그리고 다른 의생활 식생활 문화를 모두 허용해준다.
단 몽고에 충성한다는 충성맹세만 한다면 모든 것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흡사 현재의 미국과 같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옆 나라의 종교박해를 받는 종교 지도자들이
되려 자신의 나라에 쳐들어와달라는 전쟁 사주를 부탁할 정도다.
그런 종교적 자유를 누리게 해달라고 칭기즈칸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전쟁 사주를 부탁하다니..
그렇다고 내가 불륜을 옹호하는것은 아니고
단지 어떤사건에 대해 뒤에서 이럴것이다 저럴것이다하는 그러한 세태를 나는 별로좋아하지는 않는다
타인을 짓밟으며 쌓아올린 명성의 성은 이내 같은 방법으로 밀랍처럼 녹아내릴것이다.
그렇게 쌓인 위태로운 유대관계는 이내 같은 방법으로 거미줄처럼 끊어질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스스로 정한 원칙중 하나는
절대로 뒤에서 제3자의 험담은 하지않는것이다.
결국에는 이런 타인의 시선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나 자신에 대한 명상과 수양 자신의 내면에 대한 확고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면
타인에 의해 훼손되는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또한 원작에서 안나의 정부 카레닌을 보면 카레닌의 끝난 사랑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였을까
자신의 부인이 진정 사랑하는 브론스키를 바라보며 흐느끼는 것을 보며 되려 아내를 위로한다.
이미 자신의 부인이 마음이 떠났다는 걸 알면서도 아내를 사랑해서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자신은 사교계에서 버림받은 남자라는 망신을 당하게 되어
나중에는 미치광이가 되어가면서 결국 인간이 시스템에 굴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결국 자신이 온전하게 채워지지 않아 그저 시스템에 끌려다니고 마는
게다가 타인에게 자신의 선택을 넘겨버리는
내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두 가지 러브라인이 나온다
레빈, 키티
레빈은 솔직히 나랑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말을 듣기는 하는데 결국 결정은 본인이 하고 그걸 그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레빈과 결혼하는 키티는 지고지순하고 착하고 귀엽다.
그렇게 레빈과 키티의 결혼은 안나와 카레닌,안나와 브론스키와는 전혀 반대의 묘사를 보여준다.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
잠시나마 오해했던 일들
연이 끊어져 헤어질뻔한 일들.
결혼을 준비하고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 ,
농장을 경영하고 함께 상의하는 과정
아이를 교육하고 미래를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
심지어 러시아 전통 결혼식과 산후조리과정까지 나온다
(진짜 톨스토이가 지독한 작가구나 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목표가아니 결혼을 함에 있어서는 과정의 중요하고
21세기에 이런말이 우숩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만.
아직은 치기어린 말일 지도 모르겠다만 정말 운명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것을 이겨낼 용기 한송이가
마음속 깊이 피어날 것이다.
내가 믿는 기독교에서도
신이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것은 나의 외부적 조건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외부적 조건은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고 그
런 외부적 조건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은
그것들을 손에 움켜쥔 채 불안하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삶이다.
나의 나됨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안나와는 다르게 레빈 키티의 이야기는 정말 내가 꿈꾸었던 사랑이었던 거 같았다
나의 미래를 이야기해주고, 그것을 들어주고 받아주고,
같이 꿈꾸고 하는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생 늙어서
평생 내가 처음 봤던 그녀의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게 레빈 키티 사랑이야기였다.
(ㅠㅠ 그렇긴 한데.. 아 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도 없네..)
또 안나처럼 강렬한 사랑은 아니어도
천천히 무겁게 일상에서 다가오는 사랑이었고 성장하는 사랑이야기다
물론 레빈 또한 권태와 피로 덧없음에 부딪히지만
그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워준 건 키티에 대한 사랑이다.
그건 키티의 돈도 명예도 가문도 아니었다
또한 레빈 스스로의 선한 원칙이었다.
자신은 절대로 악에 타협하지 않겠다고
소년만화적인 자부심이 있었다.
나도 착함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높게 산다
요즘 사람들은 착하다고 하면 바보라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 중에는 영리하고 영롱한 사람도 훨씬 많다
세상에 칼을 뽑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자신 스스로를 수양하고 단련한 사람은
절대 세상에 속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되려 악을 선으로 대하고
역류를 순류로 대하고
되려 악을 선으로 교화시키고
역류를 순류로 바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착함에서 오는 강인함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