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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Sep 27. 2022

실례지만, 제가 좋은 직장 동료가 될 수 있을까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향한다.

책상옆에 놓인 노란 백열전등이 뿜어져 나오는 장식용 전등을 키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회사에 나갈때나 재택이나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또 틀렸다.

요즘 세상의 비밀은 얼마나 중요한건지 하루에도 몇번씩 비밀번호를 틀린다.

이번에는 SHIFT키가 제대로 눌렸는지 화면이 몇초간 멈춘채 빙글빙글 돌더니, 파란 바탕화면으로 넘어갔다.


오늘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아웃룩을키며 메일이 100개만 넘지말길 기도한다.

100개중에 쓸만한 메일은 10개 남짓, 그중에서도 내가 개입해야하는 건들은 3개다.

요즘 세상은 정말 정보의 과잉이다. 3%면 양심적으로 내가 아니라 시스템이 은퇴해야되지 않나?

쓸모없는 생각이다. 메일이 어떻게 들어오는지는 내가 짜고 있으니 은퇴해야되는 것은 나다.

여유가 있을 때, 메일함의 설정값을 한번 정리해야지 마음먹은지 벌써 3년이 지났다.

1년이 좀 넘으면 포지션을 바꾸니 그때마다 새로운 포지션에 맞춰 정리해야겠다고 맘먹고는,

일이 적응되면 금새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DNA 때문에 이번에도 왠지 실패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이 금이고 화주의 시간은 우리보다 더욱더 빠르게 돌아간다.

마치 세상은 세개의 시계로 관리되는 것만 같다.

하나는 일반사람들의 시간

두번째는 서비스 제공자의 시간

세번째는 고객의 시간


가장 빠르게 돌아가는 건 고객의 시간 아닐까?

8시부터 업무를 시작했지만 화주는 그보다 빠르게 메일을 보냈고, 어제 저녁부터 문제가 많다며 난리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 아니 이제는 정말 괜찮다.

급박한 일부터 정복하기 위해 나는 붉은 깃발을 꽂고 중요도와 소요시간을 고려하여 색깔별로 업무를 마킹한다.

으으... 나의 메일함은 이미 붉은 피를 토하며 급한 업무 창을 다섯개나 맞은 상태다.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걸로 봐서는 해볼만하다.

빠르게 인공호흡을 진행하려던 찰나,

같은 팀원이 들어와 부시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삿말이 방공호의 사이렌처럼 전쟁이 시작했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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