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진 Oct 07. 2022

실례지만, 제가 좋은 직장 동료가 될 수 있을까요?

갓 1년 차 신입사원의 이야기-2

"과장님 안녕하세요"

"안녕", 짧은 대답이었지만 김 과장의 목이 꽤나 잠겨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오늘 빨리 나오셨네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밤사이 무슨 일어났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목이 잠긴 채로 일찍 나온 사람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대화를 이어나갔다.

"응 어제 미국 가는 화물 문제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빨리 일어났네, 요즘 들어 안 막히는 항구가 없다야.." 

김 과장의 말을 듣고 나서 내 화주의 화물도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우리 팀에서 관리하는 미주 화물들 중, 대부분은 김 과장이 관리하지만 그가 없을 때 백업은 수습기간 6개월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항상 나니까.

얼른 시스템을 켜서 어제저녁과 새벽 사이에 들어온 긴급 건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스크롤은 폭포수처럼 계속 바닥을 향해 굴러갔지만 화면의 밑바닥에 닿을 때 까지는 한참 걸렸다.

다행히 내 화주들은 별말이 없었다. 오늘은 정말 시작이 좋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김 과장에게 보고 있는 건이 해결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과장은 귀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나에게 물었다.

"너 혹시 네 화물 있을까 봐 쫄아서 바로 확인했지? 없어 없어.. 내가 확인하는 김에 우리팀 것 다 봤는데 내 것만 계속 문제야. 부럽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부러움이 묻어 나왔다.

"과장님 귀신.. 아니 신들리셨나요?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일단 뭐 터졌다 하면 내 것부터 보는 걸, 사람들이 다 똑같지" 김 과장은 특유의 낮은 목소리에 발작하는 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귀엽다는 듯이 웃어댔다.

"그런데 이번 주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시작이고 다른 노선이랑 연결된 양하지에서 파업이 계속 지속될 거라고 하네. 마음 단단히 먹고 있는 게 좋을 거야. 파업이야 연례행사지만 잘 안 풀리면 원래 기항지 재끼는 일이 비일비재해지니까." 그는 웃음을 멈추고는 이내 진지하게 말했다. 

김 과장의 말은 언제든지 배가 빠져서 내 머리에 구멍이 날 수 있으니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소리였다.

다른 양하지 스케줄을 지키겠다고 Omission이 발생하면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내려야 되는 화물들이 못 내리면서 화주들의 전화가 빗발칠 거고, 그러면 메일을 볼 시간과 정신조차 없어진다. 물론 이런 일을 막으려고 해상팀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은 화주들의 분노를 하나하나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컨테이너 개수와 얼마나 많은 달러를 태워야 하는지 고려해보고 판단할 뿐이니 그들은 이 지옥이 얼마나 뜨거운지 절대 알 수 없었다. 특히 미국에서 omission 이 발생하면 기항지와 배선이 많은 유럽처럼 내려서 다른 배로 갈아타기도 힘들다. 그래서 미국 노선은 모 아니면 도이고 나를 포함한 모든 신입들이 받고 싶지 않은 구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울 바닥에서 재수 없기로는 탑이기에 역시나 미주노선의 제2 멤버로 선정됐다.


나는 한탄스러운 내 상황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잡담을 이어가기로 했다.

"뭐, 욕이나 좀 더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진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종교시설 빼면 기도 메타로 살아남길 바라는 곳은 물류회사만 한 곳이 또 있나 싶네요." 

"뭐, 괜찮아 우리 팀장님은 지구 한 바퀴 반을 돌렸는데도 안 잘렸다고 했어. 요즘 같으면 잘렸겠지만 어떻게든 버티면 되잖아?" 김 과장이 말을 끝내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하고 있어?" 진팀장이 들어왔다.






 

작가의 이전글 깃발 내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