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는 것도 힘이 들어요
삶을 살 수록 내 일같은 어떤 일들을 목격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살아있는 인간은 모두 목격자라 생각한다.
나에게 일생일대 가장 큰 목격은 역시 엄마의 아픔과 병과 죽음이었다.
무시무시한 암 중에도 지독한 췌장암은 엄마를 일년 반만에 하늘나라로 데려갔다.
그 지난한 투병과 아픔을 지켜보고, 목격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임종을 지켰다. 정말로 원하지 않은 목격이었다.
그러면서 삶의 무의미와 공허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복귀했을 때엔 큰 거래처 사장님이 상중이라고 하던데 누가 돌아가셨나 물었다.
나는 울지도 않고 엄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거래처 사장님은 자신의 아버지도 췌장암으로 그랬다고 하며 십만원을 쥐어주셨다.
나는 목격의 값인지 위로의 값인지 모를 돈을 받아들며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몰랐던 사장님의 부모를 잃은 아픔을 목격했다.
그리고 나의 큰 이모.
내가 조카라는 이유로 내가 아파서 이모 집에 살아야 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먹여주고 재워줬던 나의 이모는
100세 시대에 고작 70대인데 암에 걸렸다.
하지만 내게 말했다.
힘든 항암도 싫고, 아픈 투병도 싫다고. 시들어가며 병원에 박혀있는 것도 싫다했다.
그래서 남편도 혈육도 없는 큰 이모는 시골의 큰 전원주택 속에서 혼자 아픔과 죽음을 견디고 있다.
큰 삼촌은 혈액암을 앓다가 힘든 항암뒤에 겨우 완치 판정을 받았다.
5년간 지켜봐야 완전히 나았다는 판정을 받겠지만.. 어쨌든 삼촌은 살았다 싶다.
그 외에도 사회생활을 하면 마주치게 되는 지인들의 경조사를 치르며 ,
기쁨과 죽음과 아픔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목격자가 되어주고 ,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르게 삶을 잃고 떠나는 삶을 보면 다들 마냥 착했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자식밖에 모르며 고생을 하다 떠났고,
큰 이모는 평생을 유기견을 거둬 기르며 베풀며 착하게만 살았고,
큰 삼촌 역시 자식이 아닌 내게 사건이 터지면, 없는 아빠자리에 짜잔하고 나타나 나를 구원했다.
하나같이 지나치게 착했다.
그래서 나는 착함의 정도에 따라 하늘나라의 어떤 누구에게 맘에 들어 일찍 데려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아니면 아픔을 잔뜩 준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죽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아 남는 사람들은 그래서 어떠한 면에서 독하고, 못됐고, 불쌍하다.
나이를 먹음으로서 겪게 되는 주위의 아픔과 죽음들이 아프다.
그런 것을 목격하는 것이 삶이지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듯이
생과 사로 너무 아픈 것을 보는 삶도 삶같지 않다.
다만 견뎌내는 시간들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목격자가 되는 것은 어쩌면 저주가 아니라
그저 삶으로부터 전해 받는 일일지도 모른다.
상생하라고.
누군가의 삶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만이
그 삶의 무게를 조금 나눠 가질 수 있으니까.
그 힘으로 살아가라고.
나는 오늘도 그렇게 목격자가 되어
마음안에 몇 사람의 생을 넣고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