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➁ 성장이라는 이름의 흉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지 않아야 돼요

by 도씨


뼈가 부러지거나, 깊은 상처를 입으면

뼈가 잘못되어 비틀어져 붙을 수도

깊은 상처는 흉터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성장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크게 동의하지않는다.


온실 속의 화초가 오히려 상처하나없이 잎사귀끝까지 매끈하게 자라는 것처럼

살면서 겪게되는 상처와 역경은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은 아프게 자랄수록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악착같음과 오기나 악다구니가 생긴다고 느낀다.


화초가 잎끝까지 먼지를 닦여주는 케어를 좋은 온도와 습도에서 받을 동안,

잡초는 매번 머리채를 잡혀 뽑혀나가다가 깎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는 산다.


전원주택에 사는 이모집에서 지낼 때 느낀 것이 그것이었다.

잡초는 끝을 모른다.

다 깎아내고 뽑고 다듬어 죽였다고 생각하면 자근자근 밟아 뽑았던데에도

이미 다시 자라있다.

이게 좀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하고 놀라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머리채를 잡히는 풍파 많은 삶에서 얻는 억척스러움보다

온실 속 화초의 말도 안되는 낭만적임, 안일하고 게으르며 연약한 느낌이 부럽다.


아 물론, 온실 속에서 살 수 있는 삶이란 지루하고 단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잡초처럼 다양하고, 살기 힘들게 못 살게 굴어도, 사는 삶보다는 덜 괴롭지 않을까.

겪어보지 않는 삶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생각은 없다.


그냥 그만큼 화초와 잡초는 같은 듯 다른 세계에 산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밟아온 발밑의 삶밖에 모를 수 밖에 없다.


덕지덕지 앉아 붙은 흉터들을 만지며 화초같은 꿈을 꿈꾸는 잡초가 되어본다.

자유로와 좋다.

죽여도 다시 살아 좋다.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뽑아내도 나는 살거다.

네가 나를 죽인줄 알아도 나는 살거다.

누렇게 떠서 죽었다 생각해도 나는 살아있다..


쓰다보니 아픔을 모르는 화초와 아픔을 아는 잡초의 삶에 관해 상상을 하게 된다.

화초는 잡초를 모를테고

잡초는 화초를 모를거다.


이제,

누가 누가 더 잘 컸지?


결론 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서 마무리가 어렵다.

다만 성장은 아픔에서 자라지 않는 것 같다.

자라고 늘어가는 것은 흉터뿐이다.


그저 어떻게 살던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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