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사립초에 입학해 대학까지 에스컬레이터식으로들어간 사례는 일본에서도 ‘금수저’에 해당한다. (참고: 19화 한국입시 vs 일본입시(1))
아직 내가 만난 일본인 가운데서는 이런 금수저는 없었다. 대부분은 “아는 사람에 따르면 ~다고 한다”류의 전언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보통의 일본인들 역시 이런 특혜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 제도가 유지되는 것을 보면 사회적 저항이 크진 않아 보였다. 애초 많은 이들은 자신과 무관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느끼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일반인 기준 좀 더 피부에 와닿는 교육열은 중학교 입시 같다. 내가 자주 들락거리던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이런 얘기까지 있었다. “돈 있는 애들은 초등과 유치원 쥬켄(입시)에서 빠지고, 공부할 마음이 있는 아이들은 중학교 쥬켄으로 빠진다. 고등 쥬켄은 나머지들의 시험.”
도쿄의 경우 특히나 사립 중학교 시험에 도전하는 아이들이 많다. 일본 전체 중학생 대비 사립중 학생 비중은 약 8% 정도지만 도쿄만 놓고 보면 4~5명에 한 명 수준이다. 도쿄에는 40년 이상 도쿄대 배출 1위를 기록 중인 가이세이고교와 연결해 에스컬레이터 진학이 가능한 가이세이 중학교를 비롯해 명문중이 여럿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수는 더 많을 것이다. 동네 축구교실에서 알게 된 일본인 엄마는 큰 아이가 입시학원을 다녀서 저녁 늦게 집에 온다고 했다. 사립중 입시에 지원하는 아이들이 많은지 묻자 “한 반에 절반정도의 아이들이 사립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학군지나 부자동네일수록 그 수는 더 많다고.
사립 중학교에 진학하는 이유는 대략 한국에서 자사고나 특목고에 진학하려는 목적과 비슷한 것 같다. 다만 그 시기를 앞당겼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더불어 일본에는 모든 학교의 학업을 수치로 평가하는 ‘헨사치’, 우리말로는 편차값이 있다. 헨사치가 높은 학교일수록 입학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부 명문 사립대 부속 중학교는 특별전형으로 대학까지도 들어갈 수 있지만 꼭 이 같은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을 노린 것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우수한 친구들 사이에서 수월성 교육을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 마음이 사립중 인기의 이유일테다.
최근 사립 중학교 입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의 사립초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립학교의 인기가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일본인 지인은 “요새는 빠르면 초1부터 늦어도 3학년 후반기부터는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4학년 이후는 늦다”고 했다. 실제로 대형 입시학원은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강의를 연다. 한국 엄마인 내가 보기에도 과하다 싶은 교육열이었다.최근 일본에는 ‘교육 학대’라는 신조어도 생겼다고 한다.
다만 이런 중학교 입시가 일본 교육의 전반적 분위기라고 일반화 하긴 어렵다. 일본 입시제도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그 방식이 꽤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초등부터 명문 사립중 입학을 위해 달리는 이들도 있지만, 중학교부터 준비해 명문고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으며, 초중고는 평범한 공립을 나왔더라도 내신을 잘 준비하고 대학입학공통테스트(과거의 ‘센터시험’)를 치러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경우 역시 당연히 존재한다. 일본 대학들은 한국에 비해 전형이 좀 더 다양하고 복잡해 보였다. 이 때문인지 입시에 대해 물으면 다수의 일본인들은 “일본의 입시는 복잡해서 설명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곤 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일각에서는 어릴 때부터 치열한 수험생활을 하지만, 대입을 코앞에 둔다수의 일본 고교생은 한국에 비해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이다. 일본 고교생들은 한국의 대학생 마냥 클럽활동에 열심이었는데 한국인인 내겐 신선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일본의 대학 진학률은 50% 안팎으로 70%를 웃도는 한국보다 많이 낮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거나 가업을 잇는 수도 적지 않다고 한다. 즉 초등부터 입시로 아웅다웅하는 이들이 있지만 또 다른 다수는 학업성적이나 대학입시 이상으로 다른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런 선택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두 나라 입시제도는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예컨대 한국 입시제도에는 평등, 공정성 같은 가치가, 일본의 경우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좀 더 반영된 듯하다. 동시에 한국에서 여전히 교육을 계층상승의 유용한 사다리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그보다는 계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다는 느낌도 든다. 어쩌면 오래전 선진국에 접어든 나라에서 보이는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결론은, 어느 나라 입시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더불어, 어느 곳이나 부모 노릇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