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사람이 제가 사려는 빵을 다 사 가서 너무 럭키하게 제가 새로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야.”
응…? 뭔가 논리 전개가 이상한데? 기사에 나온 장원영의 말을 거듭 반복해 읽었다. 그러고도 잘 모르겠어서, 나무위키도 살펴봤다.
‘원영적 사고’를 주제로 한 기업교육 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러키비키는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를 ‘물이 반이나 남았네’로 바꾸는 수준의 긍정성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내가 물을 먹으려고 하는데 글쎄 물이 딱 반 정도 남은 거야. 한 컵 다 먹기는 많고 안 먹기엔 적어서 딱 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러키비키잖아!’
그러니까, 이건 좀 더 강력한 ‘신포도’론인가. 예컨대 여우가 노력을 해도 자신이 따지 못한 포도에 대해 “맛없는 신 포도 일거야” 했다면, 장원영 여우는, “포도를 못 따서 행운이야. 포도는 당이 많아 칼로리가 높은데 덕분에 다이어트를 할 수 있게 되었잖아!” 이렇게 말할지도. …이거 맞나.
여전히 내가 러키비키의 사고를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러키비키의 세계가 유지될 수 있는 중요한 근간은 ‘행운의 여신은 내편’이라는 뒷말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것은 행운의 신호라는 강력한 믿음 말이다. 그녀와 나는 분명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주말의 명화’ 속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 검프의 엄마가 말한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이라는 말을 왜곡해 맹종해 왔다. 기실 이 말은 상자 안에 어떤 초콜릿이 들어있을지 맛을 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라는 인생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은유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나는 그 말을 인생에서 맛있는 초콜릿 같은 행운은 상자 안 초콜릿처럼 제한된 것, 이라는 뜻으로 완벽히 오해했다. 맛있는 초콜릿을 일찍 다 까먹어버리면 나중엔 맛없는 초콜릿만 남을지도, 혹은 먹을 수 있는 초콜릿 자체가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 섣불리 행운을 바라거나 소진하지 말아야지!
겨울을 대비하는 여름날 개미의 마음과 비슷하려나. 아니 그보다는 크고 많은 행운이 나에게만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혹 그렇게 되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다.
도쿄의 한 인형뽑기숍
내가 믿는 행운의 여신은 내편도 아니지만 네 편 역시나 아니다. 그래서 한국보다 사행성 산업에 관대한 일본에서 자주 쯧쯧쯧, 혀를 찬다. 사람들, 거참, 행운을 저렇게 값싸게 소진해 버리다니.
문제는 도쿄 시부야의 대형 게임센터를 방앗간 참새마냥 들르길 좋아하는 내 아이들을 볼 때다. 인형뽑기부터 포켓몬 게임까지 내 기준에서는 그곳의 모든 게임기들에 과한 요행, 사행성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요행을 즐기게 해도 될까, 내가 도덕적 갈등을 하며 망설이는 사이 우리집 아이들은 이미 500엔 정도는 신나게 소비를 마쳤기 일쑤다. 그러다가 대형 인형을 하나 뽑거나 게임기에서 원하는 캐릭터 카드를 손에 넣게 되면 그날은 하루 종일 의기양양해진다.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 같은 이야기를 여기서도 듣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는 황급히 그들의 말을 수정한다. “행운은 그런 것에 쓰는 게 아니라고!”
이렇듯 행운의 여신을 소심하고 엄격하게 맞는 나도, 도쿄의 게임센터에서 죄책감 없이 즐기는 기계가 하나 있다. 바로 캡슐토이 가챠다. 가챠란 우리말로 ‘뽑기’ 정도가 적합하겠으나, 철컥철컥의 일본식 의성어인 ‘가챠가챠(がちゃがちゃ)’에서 유래한 가챠라는 말이 더 마음에 든다. 좀 더 사행성이 강한 가챠 역시나 이 나라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하겠으나, 내가 경험한 한에서 가챠는 최소한 꽝이 없으며 잘하면 맘에 드는 캐릭터 장난감이 나오고, 실패해 봐야 기대에 못 미치는 장난감이 나오는 수준이다.
그러니 결정권을 살짝 잃은 상태로, 500엔 정도의 캐릭터 장난감을 그냥 사는 셈. 가챠를 돌려 나온 캡슐토이의 뚜껑을 열기 전까진 어떤 장난감이 들어있을지 모른다는 점에선, 검프 어머니가 말씀하신 초콜릿 상자 속 초콜릿과도 좀 비슷하지 않나. 나는 결코 과한 행운이나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혹은 큰 이득은 없지만 원금손실은 적은 주식에 투자한 안정지향 투자자의 마음으로, 캡슐토이 뚜껑을 열며 아주 잠깐 설렘을 즐긴다. 그렇게 또, 500엔짜리 예쁜 쓰레기 하나가 늘었다.
ps. 글을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때 아이브의 팬이었던 아이는 ‘러키비키’ 태도의 핵심은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을 때 반응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운이 없다고 느낄 상황에도 적극적으로 좋은 요소를 찾아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그 얘길 들으니 어쩐지 나는 원영적 사고를 또 오해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글을 고쳐 써야 하나 싶지만 다시 고치려니 귀찮아서 원래 모든 해석이란 오해 투성이라고 말하며 눙치련다. 원영 씨 여전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