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본어 선생님은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가라오케를 꼽았다. 그는 도쿄에서 주로 평일 오전 홀로 가라오케에 간다고 했다. “낮 시간은 가격이 싸요. 1인당 1시간에 300엔 정도, 500~600엔짜리 음료 하나 주문하고 들어가면 보통 900엔 안팎이죠.”
최근 10여 년 간 한국식 가라오케, 노래방에 가본 적이 없다. 실제로 회사 근처 대규모 노래방이 몇 년 전 폐업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회식 문화가 바뀌고 더 이상 탬버린 흔들던 2차는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노래방은 물론 코인 노래방 폐업이 늘고 있다는 기사도 봤다. 일본은 다르려나? “팬데믹 때 잠깐 주춤했는데 여전히 회사원들이 2차로 가라오케에 많이 가요. 사무실에선 무표정에 조용한 사람들이 거기서만은 엄청 시끄러워지죠.” 아이들과 함께 가도 되냐고 묻는 내게 선생님은 “중고생들도 많이 와서 낮 시간대라면 괜찮다”라고 덧붙였다.
토요일 아침, 가족을 이끌고 동네 번화가에 있는 역 근처 가라오케로 향했다. 여전히 도쿄의 도심에는 거대한 가라오케 간판이 눈에 띈다. 이중 ‘빅 에코’와 ‘조이 사운드’가 가라오케의 양대 산맥이라고 한다.
주말 오전 11시경, 우리가 찾았던 빅 에코는 쨍한 레드와 화이트 톤에 LED 조명으로 무척 밝은 느낌이었는데 10 여개의 크고 작은 룸을 갖추고 있었다. 선생님 설명대로 방문객이 적잖았다. 우리 가족 외에도 20대 즈음 젊은 여성 무리,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들이 보였다. 모두 커피와 주스, 멜론사이다 같은 음료를 주문하고 안내된 각자의 부스로 들어갔다.
“우아~” 도쿄의 가라오케 방은 서울의 노래방 룸과 큰 차이는 없었다. 조금 더 깨끗한 느낌을 주긴 했으나 최근 노래방을 가본 적이 없으니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 탬버린이나 가발 같은 추임새용 소품이 없다는 정도가 굳이 찾아낸 특징이라면 특징. 생애 처음으로 가라오케에 방문한 우리 집 아이들이 꽤 재미난 곳을 찾은 듯했다.
“아. 파. 트. 아. 파. 트!” 한창 아이돌에 빠진 첫째가 특히 열광했다. 아이들은 한창 인기를 끄는 K팝을 줄이어 불렀다. 한글 자막과 함께 한국어 소리를 일본어로 표기한 자막이 함께 나왔다. 단 최신 K팝임에도 모니터 배경 화면은 꽤 옛 분위기라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뉴진스의 ‘디토’의 배경은 파주평화공원쯤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알록달록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사이로 1990년대 후반인지 2000년대 초반쯤 유행했던 것 같은 샤기컷을 한 남녀가 알콩달콩 데이트 중이었고, 이영지의 ‘Not Sorry’를 부를 때는 레게머리를 하고 오픈카를 몰고 다니는 20세기말 경 젊은 청춘들이 등장했다. 장소는 서울인지 도쿄인지 애매했는데 운전대가 왼쪽에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서울이 맞는 듯하다.
마이크를 계속 잡았던 아이들 사이에서 어른들도 한곡씩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간혹 어 떤 한국 노래는 오타가 발견됐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부르던 중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나뿐이야” 같은 대목을 접할 땐 오타임에도 수긍하게 됐다. 그래, 너를 사랑해도, 세상엔 나뿐이지, 인간이 그렇지... 같은 것 말이다.
사실 오랫동안 내게 노래방은 혐오시설이었다. 회식 후 술이 덜 깬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으쌰으쌰 거리는 상황은 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노래방 자체는 잘못이 없다. 에코 가득한 마이크를 통해 내 목소리를 듣는 건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 에코가 우리의 흥을 돋우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도쿄의 가라오케는 가족단위로 방문하기에도 썩 괜찮은 장소였다. 이날 약속했던 1시간이 훌쩍 지나고, 우리는 아이의 요청으로 30분을 연장을 했다. 1인당 300엔씩 내는 시스템에선 사실 여럿이 한방에 들어가기보단 한두 명씩 나눠 방을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가라오케에 폭 빠진 아이들은 이후 매 주말 아침마다 가라오케 타령을 한다. 결국 남편은 가라오케 체인에 회원가입을 했다. 무려 30% 할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