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대입 시험날 헬기도 못 띄운다던데…?”
가끔 찾는 도쿄 집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 알은체를 했다. 한국의 대입수능시험은 일본의 뉴스에서도 자주 보도된다. 수험장의 시끌벅적한 응원 풍경이나 수험생의 편의를 위해 온 국민이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 일본인들에겐 신기해 보였나 보다. 그래서 대부분 일본인들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에 대한 기본 상식(?)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도쿄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높은 교육열은 꼭 한국만의 현상 같진 않다. 실제로 도쿄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국 엄마들은 입 모아 말했다. “여기도, 하는 사람은 더해요.”
실제로 그랬다. 소수라지만 일본의 입시 경쟁은 명문 사립유치원과 사립초 진학부터 시작된다. 물론 한국 역시나 인기 유치원이나 사립초 입학 경쟁은 치열하다. 하지만 그 선발 방식이 시험이 아닌 ‘뽑기’인데 반해, 일본에는 입시를 뜻하는 쥬켄(受驗)이라는 말이 유치원과 소학교(일본의 초등학교)부터 붙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명 유치원 서류전형에서 부모의 출신학교(학력이 아닌 학교이름을 의미한다)는 물론 조부모 정보를 요구하는 곳이 있다는 ‘설’, 유명 대학부설 유치원에 들어가려면 부모가 해당 대학 출신이거나 혹은 동문과의 연줄이 있어야 한다는 ‘설’ 등이 무성했다. 일반적으로 사립 소학교에 합격하려면 서류전형을 거쳐 지필 시험, 학생 및 학부모 면접 등을 통과해야 한다.
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일본의 독특한 입시제로도 꼽히는 ‘일관제(一貫制)’ 학원 제도, 이른바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에 대해 알고 난 뒤에는 그 열기에 대해 다소 이해하게 됐다. 보통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은 일본 명문 중고교가 통합돼 연결되는 사례를 뜻하지만 일부 특별전형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일본 왕실 가문이 주로 진학해 온 가쿠슈인 대학이나 명문 사립대인 게이오 대학 등 일본 유명 사립대의 경우 초등부터 대학까지 연결하는 일관제 학원제도를 운영한다. 일본의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 중에서도 이런 에스컬레이터 제도로 대학까지 진학을 한 사례가 적지 않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세이케이 대학 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졸업했고, 유명 아이돌 그룹 ‘아라시’의 멤버인 사쿠라이 쇼는 게이오대 부설 소학교에서 시작해 게이오대까지 나왔다. 어릴 때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그 재단의 대학진학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보통 유명 사립대 부설 소학교의 경우 10대 1의 정도의 경쟁률을 기록한다고 한다. 높은 수치지만 사실 엄청난 혜택치곤 생각보다 경쟁률이 낮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입학이 어려운 데다 비싼 학비를 감당할 정도로 재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았다. 나에게 한국의 수능시험에 대해 물었던 미용실 원장님이 손바닥을 뒤집어 손가락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일본의 좋은 사립대는, 이게 있으면 갈 수 있죠.” 일본이나 한국이나 돈은 동그라미로 통한다.
다만 이 입시는 돈 만 있다고 합격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아이 친구 엄마가 말했다. "시험 합격이 정말 쉽지 않아요. 단순한 지식만 보는 것뿐 아니라 아이와 부모의 자세, 글씨체 같은 것도 봐요. " 또 다른 엄마가 귀띔했다. “주말에 정장 갖춰 입고 란도셀 가방 멘 어린 아이랑 엄마가 역 주변 어딘가 들어가는 모습 본 적 있죠? 그게, 사립학교 면접 준비 학원이에요.”
사립초 입시에 대비하기 위해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니는 것은 이미 특별한 게 아닌 듯하다. 서류 심사와 면접이 중요하다는데, 그 말인 즉 부모의 재력 못지않게 집안의 배경, 교양도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부모 면접을 위해 부모 역시나 옷차림이나 말투 같은 것을 트레이닝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보통 유명 사립대 부설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시작한 사례를 찐 ‘금수저’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고.
그 얘기를 들으며 바지런히 준비했으나 결국 사립초 시험에서 떨어진 누군가, 얼굴 모르는 어떤 일본 아이와 부모의 좌절감을 잠시 상상했다. 동시에 한국인의 기준에선 한없이 불평등해 보이는 이 제도를 일본 사회가 계속 유지하고 있는 사실이 좀 신기했달까. 어쨌든 나는 한국인인지라, 그래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는 입시가 없어서 다행이다,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