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지 않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찾아갔다가 신용카드가 없어서 돌아온 적이 있다. 키오스크엔 ‘현금결제 불가’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일본에서의 습관으로 지갑에 현금을 지니고 있었던 나는 키오스크 대신할 매표소를 찾았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영화관에는 매표창구가 아예 사라진 듯했다. 한가한 시간대였기 때문인지 점원은 보이지 않았고, 스낵 역시나 키오스크로만 결제가 가능했다.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리며 대형영화 체인을 저주했다. “아주 배가 불렀군!”
당시 키오스크 사용이 서툴렀던 내가 몰랐던 게 있다. 키오스크에는 신용카드 외에도 다양한 결제 수단이 존재했다. 삼성페이나 네이버페이 등 다른 수단으로도 영화티켓 구매가 가능하다. 다만, 그저, 현금만 불가능할 뿐이다.
사실 영화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주머니에 현금만 있을 경우 활동에 꽤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시내버스 역시 버스비로 현금을 받는 것을 거부했고, 현금결제가 불가능한 무인 문방구와 커피숍 앞에서 번번이 좌절을 거듭했다. 실제로 현금을 쓸 수 있는 곳이 줄다 보니 ATM기기도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돈을 대신할 수많은 지불수단이 늘었지만, 진짜 돈은 쓸 수 없다니.
현금 없는 사회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확산됐고 각국 중앙은행들도 속속 디지털 화폐를 내놓고 있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현금은 유지 관리가 불편할뿐더러 효율적이지도 않다. 현금의 종말은 당연한 수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다만 내 분통의 기저에는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들, 아직 키오스크가 익숙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 한몫했다. 돈을 내겠다는 것도 거부당하는 소비자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 걸까. 다소 과장된 감정이었다 해도 당시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당신 같은, 시대에 뒤처진 고객은 굳이 챙겨주는 게 성가신 일이죠. 전반적으로 타산이 안 맞습니다.’ 영화관은, 버스는, 커피숍은 내게 그렇게 선언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이처럼 호들갑을 떨며 흥분하는 데는 바로 직전 일본에서 살다 온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현금이 사라지는 거대한 트렌드에서 아주 살짝 비껴가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변화의 완충제가 갖춰진 나라였달까. 아니 사실 이 나라는 가끔 좀 그 완충제가 과해서 ‘변화가 있다고요? 완충제 밖에 안 보이는데요?’ 되묻게 하는 나라였다.
예컨대 현금을 보자. 확실히 일본의 수많은 자판기와 자동기계들은 현금을 사랑한다. 일본의 아줌마들은 지폐 지갑보다 동전지갑을 더 선호한다. 물론 일본에도 세븐일레븐이나 로손 같은 편의점부터 니토리나 유니클로 같은 인테리어와 패션 체인, 이온 같은 대형 마트까지 모두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가 존재한다. 다만 한국의 키오스크와 이 기계들의 차이가 있다면 현금, 특히 동전 이용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유니클로의 무인 계산대는 바코드를 일일이 찍을 필요 없이 무더기로 옷을 올려만 둬도 계산이 되는 시스템을 갖췄는데 이 기계로는 현금카드나 모바일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금도 받는다. 무인계산대의 동전 주입구는 소용돌이 모양인데 뱅글뱅글 동전이 굴러가며 입구로 쏙 주입되는 모습이 신기해서인지 우리 집 어린이들은 서로 자기가 계산을 하겠다며 옥신각신 하곤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일본도 한국처럼 빠르게 무인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완벽한 무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특히 놀랐던 것은 마트에서였다. 도쿄의 마트에는 두 가지 종류의 기계가 있다. 하나는 한국과 동일한 무인 계산기다. 바코드 마킹부터 지불까지 모두 기계로 홀로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지불기기다. 구매한 상품을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어 계산해 주는 캐셔가 있지만 이후 지불 단계에선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구매자는 전자카드 전자머니 현금 교통카드 등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지불 방식을 정해 결제할 수 있다. 일본에는 동전 같은 현금을 사용하는 이들이 많아서 지불기기만 따로 이용할 경우, 대기 줄의 길이가 줄어들 수 있다. 마트로서는 두 가지 버전의 기기를 두는 게 다소 낭비 같은 느낌도 들겠지만, 나 같은 구매자 입장에선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기계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게 느껴졌다.
사실 키오스크 같은 기기에 대한 내 거부감의 기저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키오스크 따위도 당황스러운데, 앞으로 더 늙으면 더 두려워질 것 투성이겠지, 이 망할 세상! 더 망할 세월! 겨우 40대인데도 나를 스쳐 앞서가고 있는 세월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좀 천천히 가면 안 될까. 우리는 좀 준비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일본의 완충제 같은 시스템을 볼 때면 다소 부러웠다. 혹 내가 뒤처지더라도 나를 받쳐 줄 완충지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이런 완충지대는 비단 노인에 대한 혜택만은 아니다.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인 나도 이런 기계를 좀 더 편리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 못지않게, 좀 더 친절하고 인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구구절절 얘기했지만 결론은, 키오스크를 늘리는 것만큼 어딘가에선 현금만 가진 사람을 배려해 주면 좋겠다는 거다.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완충제도 좀 갖추고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