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의 택시 운전사
Tokyo Keyword / 택시 タクシー
김포와 하네다를 오갈 때 종종 택시를 이용한다. 늦은 시간 공항에 도착할 때가 많다 보니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최근 김포공항에서 내가 탔던 택시의 기사 아저씨는, 차 밖까지 나와서 내 조그만 기내용 가방을 덥석 들며 환대해 주셨다. “아이고~ 어서 오십쇼~” 그러나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차 안에서 목적지를 말하자 금세 화기애매해졌다.
(나) “기사님, **동 XXX아파트요!”
(기사) “네? **동이요?”
(나) “네, **동이요. @@@옆에 있는 XXX아파트….”
(기사) “아… 강남 가는 줄 알았는데…”
순간 룸미러에 비친 60대 즈음 기사 아저씨의 실망한 눈빛이 마음에 콕 박혔다. 무안하고 억울한 마음. 저도, 강남에 살고 싶습니다만.
내 복잡한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아저씨가 황급히 설명을 덧붙이신다. “보통 김포에서 작은 가방만 달랑 들고 타시는 분들이 강남에 많이 가시거든요. 그래서 내가 신나 했죠.”
흥, 비강남인도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탑니다, 기사님. 속으로 꿍얼거리고 있는데 이어지는 말. “**동은, 돌아올 때는 빈 택시로 돌아와야 하니까요.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먹고사니즘’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비슷한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두 배 정도 이익 차이가 생긴다면 누구든 실망할 만하다. 잘못이라면 그 실망을 비강남인에게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실수를 종종 하니 꿍한 마음을 풀기로 한다. “네 기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자 말꼬가 트였다.
(기사) “이 시간에 **동에 가서 손님을 내려드리면 이후엔 보통 서울역으로 가죠. 12시 40분 막차가 있거든요. 거기서, 외곽으로 가면 정말 좋죠.”
(나) “그럼 기사님도 서울역으로 가시겠군요.”
(기사) “아, 나는 하나 더 대안이 있습니다. 광장동 워커힐. 거기 카지노가 있어요.”
아저씨는 이후 한참 동안 자신의 영업 비밀을 방출했다. “워커힐에서 잘 안 풀려서 화가 난 일본인이,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 카지노) 가자고 하면, 그날은 정말 땡잡는 거죠!” 이 얘길 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정말 잭팟을 터뜨린 사람 같은 흥분이 서려있었다.
집으로 가는 30분가량 대화가 이어졌고 아저씨는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서울의 주요 호텔과 관광지를 주로 오가는 자신의 일과를 구구절절 들려주셨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 편, 각 비행기 객석의 수, 주변에 대기하는 택시들의 분포를 확인하고 동선을 설정하는 이 치열한 먹고사니즘의 세계. “나, 이거 젊은 애들에게 배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그 고단함을 이해할 것 같았기에 나도 적당이 흥을 맞췄다. “와, 대단하시네요!” 그날 택시비는 3만 원 정도. 나는 아저씨가 돌아가는 길에 꼭 장거리 손님을 태우길 바란다는 덕담도 했다.
며칠 전 내가 탔던 이 택시가 서울 택시의 평균치라고 할 순 없다. 서울 택시는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수렴하기엔 각각 개성이 과하게 넘친다. 택시 안의 인테리어를 보라. 가족사진부터 십자가와 묵주 목걸이, 염주 팔찌까지 기사의 취향과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때가 많다. 라디오나 음악이 켜져 있는 것도 흔하고, 그 채널과 음악의 장르도 다양하다. 심지어 TV를 보시는 분도 계시다. 담배 냄새가 나는 택시가 있는가 하면 페브리즈 향이 느껴지는 택시도 있다.
일본은 반대다. 하네다 공항에서 종종 택시를 이용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 택시는 ‘지난번 탄 그 택시가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규격화 돼 있다. 무색무취의 택시 안에서 기사 개인의 취향을 느끼긴 어렵다. 그나마 개인택시는 종종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데, 그 무엇이든 내가 탔던 검은색 택시들은 대부분 대동소이했다.
도쿄의 택시 기사들은 대개 말이 없다. 택시 안에 흐르는 라디오나 음악 소리도 없다. 앞 좌석 오른쪽에서 운전하는 기사의 대각선 뒷 방향 자리에 앉으면 정면에서 무음으로 스크린 광고가 반복되는 걸 보는 게 다다. 적막이 어색해서 언젠가는 기사에게 일본 택시는 너무 조용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초로의 기사는 허허 웃으며 손님이 뭔가 묻기 전까진 말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을 오가는 생활처럼, 하네다공항과 나리타공항을 오가는 생활도 존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내 일본어나 도쿄 지리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 할 말이 없어서 “그렇군요” 몇 마디 더 하곤 결국 대화가 끊겼다. 도쿄의 택시기사가 과묵한 건 내 짧은 일본어도 한몫했다.
도쿄에서 나는 손님의 운행거리가 짧다고 승차거부를 하거나 실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기사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실망은 했겠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더듬더듬 일본어로 주소를 얘기하면 기사들은 대부분 정중한 경어체로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는 잠시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운 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한다.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 그들은 대부분 과묵하고 정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모두가 다 정직할리는 없다. 예컨대 공항에서 간혹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유료도로를 선택할지를 묻는 기사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네 좋은 쪽으로 가주세요’라고 했다가 이후 새벽 시간대라 유료도로와 일반도로의 도착시간 차이가 거의 없음에도 비용이 우리 돈 3만~4만 원가량 더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부턴 무조건 일반도로를 외치는데, 그럼에도 유료도로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고 나를 설득하는 기사를 만날 때가 있다. 물론 진짜 내 편의를 고려한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이들에 대한 내 의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전반적인 친절도를 비교하자면 일본이 우세하다고 생각한다. 자동으로 열리는 택시 뒷문, 적절한 속도, 뒷자리 앉는 손님을 배려한 앞뒤 좌석 간격, 캐리어가 있을 경우 기사가 직접 들어 트렁크로 옮겨주는 시스템 등 일본 택시는 디테일하고 균질한 서비스 매뉴얼을 갖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선택은 한국택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 택시요금은 한국의 두 배다. 한 예로 나는 때로 인천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를 과감히 탈 수 있지만, 도쿄 외곽의 나리타 공항에선 절대 그럴 수 없다. 나리타에서 도쿄 들어오는 택시를 탔다간 서울행 비행기 값이 나올지도 모른다. 택시비 앞엔 장사 없다.
미터기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숫자에 조마조마하다가, 도착지에서 한국보다 훨씬 비싼 택시비를 지불하고 나면 친절하게 자동문이 열린다. 택시 밖으로 나오며 이런 친절 대신, 500엔이라도 깎아주시지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친절이란 이처럼 비싼 거다. 누군가의 살뜰한 친절로부터 고작 5000원 할인을 생각하는 나의 속물근성이 실망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김포공항에서 강남 손님을 못 태워서 서운했던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한다. 아저씨가 광장동 워커힐에서 땡잡으시길 바란다. 이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