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머무는 동안 이 거대한 도시가 친절한 초등학교 선생님 같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도쿄뿐 아니라 일본 사회 곳곳에는 수많은 지시와 안내들이 숨어있다.
대표적인 게 ‘줄서기’ 문화다. 도쿄의 평일 아침은 고학년 언니를 앞세우고 한 줄 혹은 두 줄로 서서 등교하는 초등학생들과 함께 시작된다. 한낮에는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어린이집 유아들이 노랑 분홍 하늘색 모자를 쓰고 줄 서서 산책을 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유명 맛 집뿐 아니라 전철이나 버스, 혹은 편의점까지도 반듯한 대기줄은 일상적이다. 줄을 따로 세우는 사람은 없지만 살펴보면 줄마다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닥에는 줄을 서는 방향뿐 아니라 발자국 그림이 여러 개 박혀있어 앞사람과 간격까지 정해 놓은 게 많다.
사람 뿐 아니라 물건 줄 세우기도 중요하다. 내가 다녔던 일본어 교실에는 각각의 책상아래 제 자리를 알려주는 바닥 테이프 표기선이 그어져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주로 소수 학생이 책상 서너 개를 따로 빼서 둥그렇게 마주보고 진행했는데, 수업이 끝나면 그 바닥 테이프 표기선에 맞춰 책상을 재배치하곤 했다. 책상은 앞뒤가 구분 되지 않는 디자인이었지만 헷갈림을 방지하고자 앞부분에는 친절하게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자리를 다시 정리할 때마다 선생님은 “테이프로 표기된 곳이 앞”이라며 한 번 더 상기시켜주셨다.
거리나 공공장소 곳곳에 안내 포스터나 간판도 많다. 교통 약자에게 자리 양보나 휴대전화 사용 금지 같이 한국에서도 익숙한 예절부터 여행 트렁크를 주변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끌라는 좀 더 세세한 가이드도 있다. 대중교통부터 공중목욕탕까지,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친절히 안내한 그림 게시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공 예절 대부분은 대략 한국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뭐 이런 것까지’와 ‘정말 친절하다’ 싶은 마음이 오락가락 할 만큼 꽤 구체적이다. 한 예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도쿄의 시내버스는 창문을 10cm씩 열어 두도록 했는데, 창 아래 가로 10cm 빨간 화살표를 붙여 그 길이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당연하게 일본의 학교와 관공서, 회사에도 숱한 매뉴얼이 존재한다. 하다못해 인사 각도와 고개 숙이는 몇 초의 시간 전화응대 목소리까지도 매뉴얼이 있다. 회사채용에는 회사가 안내한 매뉴얼에 맞춰 철저하게 대응한 사람이 취업에 성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본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친절함은 관련 매뉴얼 속 기술과 기교를 충실히 습득한 결과물로서 여겨지기도 한다.
일본 생활 초기 과자봉지와 포장상자를 여는 법까지 세세하게 설명된 매뉴얼을 종종 과하다고 툴툴 거렸던 나는 매뉴얼을 따를 때 좀 더 편리해지는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서부터는 점차 매뉴얼에 의지하게 됐다. 매뉴얼에 의지하다보면 물건이나 상황을 대하는 태도도 다소 수세적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뭔가 가전기기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면 무작정 허술한 제조사 비난을 했던 나는 비슷한 어려움을 일본에서 겪을 때 혹시 뭔가 내가 매뉴얼대로 따르지 않았던 게 아닌지, 내 행동을 먼저 점검하곤 했다. 어쩐지 친절하지만 엄격한 선생님에게 길들여진 성실한 제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당연히 이 매뉴얼 사회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존재한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크루즈에서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존재하지 않는 매뉴얼 탓을 하며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해 감염자 확산을 부채질한 사례는 대표적인 매뉴얼 사회의 폐단으로 꼽힌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매뉴얼 집착은 유연한 사고나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예컨대 나는 종종 일본어 교실 책상 배치를 하며 다음날 또 쓸 책상인데 굳이 바닥 테이프 표기선을 따라야하나 싶은 마음이 종종 들기도 했다. 좀 더 우리는 책상 배치를 창의적으로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나.
하지만 그럼에도, 테이프 표기선의 존재는 학생들이 정리 습관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긴 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고작 책상 배치를 창의적으로 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기 보단 다른 쪽에 힘을 쏟는 게 더 생산적이기도 하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여전히 수많은 일본인들은 매뉴얼을 찾고 새로운 매뉴얼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재해가 많은 이 나라에서 매뉴얼과 질서는 확실히 큰 효력을 발휘했다. 여전히 일본의 서점에는 수많은 매뉴얼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 매뉴얼 서적 중에는 매뉴얼 만드는 법에 대한 책도 있을 정도니 정말 이 매뉴얼 사랑은 지독하다 싶기도 하다. 어쨌든 다수의 일본인들은 그 안내를 성실히 따른다. 다만 한국인 나는 종종 ‘이 융통성 없는 사람들아’ 소리 없이 외치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 돌아왔다. 서울역에서 긴 줄 뒤편에 있던 이들이 하차하는 택시에 재빨리 새치기하거나, 마을버스가 정류장보다 멀찍이 떨어져 정차할 때 한 무리의 군중이 기민하게 우르르 몰려 버스에 오르는 순간순간 긴박감이 넘쳤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전략, 큰 그림도 그려야했다. 그러니까 이곳에선 매뉴얼 대신 눈치게임이 넘쳐났다. 나도 이제 정신 차리고 속도감을 장착해야지 마음먹으며 멈춰서는 버스를 향해 달려가다가, 문득문득 고리타분했지만 친절했던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