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를 좋아하는 아이, 나도 좋다

by 티라미수

둘째 아이가 올해 들어 시에 관심을 갖더니 시를 자주 읽고 종종 쓴다. 특히 나태주 시인을 좋아한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집을 발견하고 좋아서 한참을 읽더니 특히 좋은 시에는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포스트잇 붙여진 시를 엄마도 읽어보라 하였다. "엄마는 어떤 시가 좋았어?" 내게 물었다. "<제비꽃>이 좋네"

제비꽃 (나태주)

그대 떠난 자리에
나 혼자 남아
쓸쓸한 날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
피었습니다

"너는 어떤 시가 좋아?" 아이에게 물었다. "그리움"

그리움 (나태주)

햇빛이 너무 좋아
혼자 왔다 혼자
돌아갑니다.


어제 점심시간에 불현듯 시집을 읽고 있던 둘째가 떠올랐다. 시집을 선물해야겠군.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나태주 미니 시집>과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두 권을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을 했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에게 시집 두 권을 주문해서 내일 도착할 거라고 말하니 너무 좋다 하였다.


오늘 저녁을 먹고 있는데 시집 두 권이 도착했다. 역시나 행복해하였다. 아이는 먼저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나태주>를 집어 들었다. "표지도 예뻐"라며 환하게 웃었다. "프롤로그도 있네. 프롤로그가 좋으면 책이 기대되고 에필로그가 좋으면 감동이 오래가"라고 말하며 포스트잇을 가지러 갔다. 역시나 시 한 편 한 편을 읽어가며 맘에 드는 시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할아버지 어린 시절 1>을 큰 소리로 읽어주어 함께 웃기도 했다. 좋았다. 나의 어린 시절 할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도 문지방 밟지 말라고 하셨었는데.

할아버지 어린 시절 1 (나태주)

밤에 휘파람 불면 뱀이 나온단다
문지방 밟으면 엄마가 죽는단다
머리통 뒤로 손깍지 껴도 엄마가 죽는단다
또 생쌀을 먹어도 엄마가 죽는단다
옛이야기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
너는 진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란다

할머니 말씀이 정말인 줄 알고
혼자서만 겁이 나고 걱정되었던
키 작은 남자아이
그것이 할아버지 어린 모습이었단다

아이는 시 읽기를 좋아하고, 시 쓰기를 좋아하여 꾸준히 쓰고 있다. 그동안 18편을 썼다고 하였다. 아이가 쓴 시를 읽다 보면 우리 둘째에게 이런 감성이 있었나 싶어 놀랍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다니 반갑기도 하다.

초등학생이 감성 가득한 시를 쓰다니 혹시 요즘 심경에 변화가 있나 걱정이 되어 물어보면 시는 시일뿐이란다.

괜한 걱정은 접어 두고 응원만 하자 :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