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되게 신나.”
이 말이 이렇게까지 섬뜩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더글로리' 드라마를 보고 처음 알았다.
같이 말라 죽을 각오로 복수를 다짐하며 내뱉는 그 대사.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려는 ‘신남’은 그와는 정반대다.
아주 밝고, 아주 단순하고, 필터 하나 없는
아이 같은 신남.
그냥, 이유 없이 좋은 상태.
뭘 해도 될 것 같은
내 안의 작은 폭죽 같은 기분.
아마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다.
“인생에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일곱 살.”
강원도 시골에서의 나는
그야말로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죽은 개구리가 물에 떠내려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울면서도
해 질 때까지 개구리 알을 주워 담고,
황토를 보석처럼 아지트에 모아두던 아이.
학교 둘레에 심은 나무가
맛있는 걸 먹으면 더 잘 자랄 거라 믿고
우유도 주고, 사이다도 주고,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먹이던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나.
5월이 되면 아카시아 향이 마을을 채웠고,
나는 그 잎을 머리에 둘둘 말아
스스로 파마를 완성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네잎클로버를 찾겠다며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로
풀숲을 뒤지던 아이였다.
자전거가 타고 싶으면
그냥 올라탔다.
넘어지고 까지고,
고랑에 처박혀도
다음 날 또 탔다.
잠자리를 잡겠다고 손을 뻗다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턱에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그 집념만큼은 지금도 인정이다.
돌을 쌓아 나만의 집을 만들고,
대문도 없으면서
짱돌로 문을 ‘닫아두던’
그 시절의 나.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러도
“나 지금 집에 없어!”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버티던 아이.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게 참 대단한 에너지였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고,
그 시간은 내 안에
단단한 밑바탕이 되어 남아 있다.
초등학교에 내가 심었던 그 나무,
지금쯤 꽤 자라 있겠지.
나는 아직도
그때의 나를 마음에 품고 산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철이 덜 들었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고,
듣고 싶은 게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다.
마치 ‘영심이’처럼.
내가 영심이니까
조금 똘똘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경태 같은 짝꿍을 만난 것이지 싶다.
아이들은 가끔 말한다.
“엄마는 아빠 잘 만난 것 같아.”
음… 사실은 반대여야 하는데.
내가 사고 치면 수습은 늘 짝꿍의 몫이다.
그래서 참 고맙다.
다만 문제는,
그 고마움을 말로는 잘 못 전한다는 것.
입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왜 그렇게 투박해지는지.
그래서 아마,
나는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말 대신 글로 마음을 전하려고.
가끔 이유 없이 우울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일곱 살의 나를 꺼내 본다.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그 아이.
그 아이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다시 일으킨다.
'나 되게 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