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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Sep 06. 2023

운칠기삼, 조선태생 주원장(설화)

조선 지배층의 사대주의를 꼬집다



조선의 지식인이나 지배층이 오매불망 事大한 명나라, 그리고 그 나라의 건국자 주원장에게 나라 이름까지 승인을 받는  지배층의 행태가 백성들 눈에는 어떨게 보였을까?


 백성들은 주원장을 설화로 끌어들여  한반도에서 태어난 운이 따르고 능력 있는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백성은 차리리 그를 우리와 같은 편이라고 여김이 어떨지 말하고 싶었을까? 설화의 내용을 알아보자.         


- 부처 귀에 뼈를 걸고 주원장이 된 청년 -   

  

 진해 웅촌에 천자봉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보자기가 아버지의 시신을 매장할 곳을 못 찾아 그냥 두고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이때 중국에서 지관이 자기 아버지를 묻을 명당을 찾아 진해까지 왔다. 


지관은 물이 무서워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보자기에게 물속에 있는 미륵불 오른쪽 귀에 지관 아버지의 뼈를 걸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왼쪽에 보자기 아버지 뼈를 걸어도 좋다고 했다. 


보자기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미륵불의 부릅뜬 눈이 무서워 미륵불의 등 뒤로 가서 뼈를 귀에 걸었는데 부처 등 뒤에서 봤을 때 오른쪽 귀에 지관 아버지 뼈를 왼쪽에 보자기 아버지 뼈를 걸고 물 밖으로 나왔다. 지관의 부탁과 반대로 뼈를 걸게 된 것이다. 보자기는 나중에 중국 가서 주원장이 되었다.     


- 주원장의 등극 -     


  어떤 백정이 있었는데 신세를 고치려고 인근에 사는 지관에게 고기의 좋은 부위를 여러 차례 선물을 하였다. 얼마 있다가 지관에게 명당이 어디냐고 물으니 임금묘의 상석 밑부분이라 하였다.


그래서 부친을 상석 밑으로 이장을 하였는데 나중에 발각이 되어서 서울로 압송되었다. 임금이 벌을 주려하자 출생 비밀이 있다고 둘러대니, 내용인즉 선왕이 지방에 왔을 때 자기 모친과 하룻밤을 지내 자기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임금은 이복형제를 만났다고 좋아하며 양주목사에 임명을 하였다. 가마를 타고 임지로 가는데 기분이 무 좋아서 ‘날으것다’라고 혼자 읊조렸다.  나중에 중국에서 사신이 왔는데 “나는 인재”를 요구하자 백정을 중국에 보내게 되었다.      


중국 황제가 ‘나는 시범’을 보여달라고 하자 백정은 삼일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하여 우선 위기를 모면했다. 삼일째 되는 날 목매달아 죽으려고 산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귀신들이 ‘나는 옷’을 가지고 놀고 있기에 그 옷을 가지고 싶다 하여 “나는 옷”을 얻게 되었다. 


‘나는 옷’을 입고 시범을 보이자 황제도 직접해 보겠다 한 후 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올랐는데 내려가는 방법을 묻지 않아서 하늘 끝까지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빈 용상이 돼버린 의자에 백정이 앉아 황제가 되었다. 

    

- 주원장과 명당 -     


주원자의 부친이 소양호에 살고 있는데 중국에서 지관이 와서 명당을 찾아낸 후 계란 7개를 사 오라고 하였다. 주원장의 부친이 몰래 7개 중 1개를 삶아서 지관에게 줬다. 


지관은 땅에 계란을 묻고 얼마 지나자 여섯 곳에서 병아리가 나오는데 한 곳에서 나오지 않자 명당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가버렸다. 부친이 죽자 주원장은 지관이 선정했던 명당에 부친을 묻고 중국으로 갔다.


 그 곳에서 짚으로 만든 북의 큰소리치기 대회에서 1등을 하여 천자가 되었다.     


- 처 잘 만나 황제가 된 주원장 -     


장백이 누이가 법주사에 가서 오빠의 성공을 기원하는데 어떤 남자가 법당으로 와서 부처께 대국천자가 될 수 있냐고 큰 소리로 묻자, 누나는 무서워서 부처 등 뒤로 숨었다.


답이 없자 이 남자는 부처귀를 잡고 물었으나 역시 아무 응답이 없어 부처를 자빠트려 버리고는 뒤에 숨어 있는 장백이 누이를 발견하자 중국에 데리고 가서 살았다. 

     

이 남자 대국을 평정하였는데 그가 용상에 앉으면 내치는 것이었다. 누나가 장백이를 앉혀보라고 하자 용상이 거부를 하지 않아 천자가 되었다.    

 

지명과의 관계   

  

위 설화의 분포지역은 아산, 옥구, 성남, 서산 등이다. 현재의 지명이 나온 시기는 조선 이후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지명은 1266년 정도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이들 지역의 지명 나이는 매우 짧다. 


즉 지명이 자주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지명은 권력관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사회주도층이 지명을 권력의 실천 수단으로 자주 활용했다는 이야기이다.   

  

주원장 설화에 대한 단상     


주원장은 매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어렸을 때에 절로 출가를 하였다. 청년이 되어 환속한 후 원나라 말기 혼란기에 두각을 나타내어 명나라를 세웠다. 주원장은 중국인 설화중 황제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설화에서 주원장의 고향이 한반도의 황해도, 경상도, 단양등으로 특히 경상도 웅천을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로 그와 비교되는 인물은 이성계이다.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몽골을 무찌르기 위해 중국으로 갔으나 인물됨됨이에 많이 달 주원장은 중국을 이성계는 고려를 차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주원장의 설화는 왜 생긴 것일까?     


고려말의 몽고와 임란과 호란에 의한 이민족에 대한 굴욕과 희생으로 큰 고통을 겪은 백성들 입장에서 지배층을 못마땅해하고 쌓 불만의 대리해소가 필요하였다고 본다.


주원장은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의 자식에서 한족을 지배하는 몽골을 무찔러 황제가 된 바, 조선백성의 입장서 대리만족을 할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주원장의 행적과 상반되는 이성계는 왜 등장하는 것일까


이성계는 군벌출신이었으며 요동을 정벌하라는 고려정부를 배반하였다. 백성들 눈에는 배신자 내지 본인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인물로 비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원장의 출생지를 왜 한반도라고 여겼을까?


백성의 눈에 영웅이고 대리만족을  주는 인물이므로 그런 사람과 같은 부류이거나 동일시하는 마음으로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로 설정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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