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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Nov 08. 2023

슬기로운 세상살이(제갈량 설화)


어느 것이 마음이 끌리나요? 


장면1, 적벽대전의 일타강사로 나선 제갈량

삼국통일의 키포인트 적벽전쟁에서 동남풍을 불러일으켜 조조를 좌절케 하고 유비를 기사회생시키다.


장면2, 유비의 잔심부름꾼 손건과 미축

조조에게 쫓겨 정착할 곳도 없는 처량한 유비팀에서 자잘한 역할을 하다 뒷모습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다.

          

사람들은 삼국지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 중 제갈량을 무척 좋아한다. 뛰어난 재주와 근엄한 외모 그리 오직 나라만을 위하는 근무자세 등을 꼽는다.     


그러나 제갈량의 흠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모습 때문에 오히려 친근감이 없고 가까이 갈 수 없는 인물인 것 같다. 이에 비해 손건과 미축은 유비가 아직 터전도 못 잡고 살아가기도 어려울 때 잠시 등장하는데 역할도 큰 비중이 아니며 사라질 때 언급도 없다.   

   

직장생활 초기 어떤 사적인 모임에서 난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면 어떤 인물과 견줄 수 있을까?” 

“손건, 미축이야.”          


소설 삼국지를 읽는 사람의 대다수는 제갈량을 왜 좋아할까? 만일 제갈량이 빠진다면 소설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주시하고 환영한다. 감히 따라 할 수도 없고 대리만족을 할 수도 없는데...     



설화층은 제갈량을 어떻게 생각할까?  

   

제갈량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했으나 워낙 돈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도 결혼은 사치였는데 어느 날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12시에 00집 앞으로 꽃가마 세대가 지나갈 것이다. 가운데 가마에 네 색시가 될 사람이 타고 있다. 한번 만나봐라.”     


꿈은 믿을 바 못된다고 여겨 나가보지 않았다. 그날 밤에 또 같은 꿈을 꾸었다. 다음날 00집 앞으로 가서 지나가는 가운데 가마의 안을 들여다보니 어여쁜 색시가 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두 사람은 결혼 날짜를 정했다. 약속한 날이 되자 말을 타고 장가를 가는데 몇 시간을 가는 것이었다. 금강산에 있는 어느 깊은 골짜기처럼.     

 

신부집에 도착하자 장인 장모될 사람이 제갈량을 맞이하고 잔치를 열었다. 상례를 마치고 밤이 되자 신혼행사를 치르려고 신부방에게 들어가서  마주하여 보니 이전 꽃가마에서 본 어여쁜 여자가 아니고 빼빼얼근(못생긴?) 생김새였다. 


마음에 안 든 제갈량이 하인을 불러      

“야! 말을 내어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나 장가들지 않으련다.”    

 

말을 타고 밤새 달려 날이 샜는데도 처가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색시가 술법을 부려 그리된 것으로 도망칠 수도 없어 색시에게 사과를 하였다.


 제갈량은 동방화촉을 치르지는 않았으나 혼례를 마쳤으니 여자를 데리고 신행을 했다.     

집으로 온 후 빠빳한(빼박) 여자가 미워서 뒷방에 가두고 밥도 세끼 주먹밥만 줬다. 하루는 제갈량이 생각해 보니 여자를 데리고 왔으니 안 살 수도 없고 해서 저녁에 여자가 자는 방에 들어가 봤다.    

  

자는 모습이 몸은 몸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팔을 팔대로, 머리는 머리대로였다.

“이거 큰일이 났구나”     


제갈량은 색시에게 잘못을 빌었고 색시의 술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제갈량은 부인 덕분에 신출귀몰한 재주를 갖게 된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위인전이나 소설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인물을 좋아했으나 장년이 되어 삶을 뒤돌아보니 사회에 뛰어난 사람도 필요하나  보통사람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성실하게 견뎌가는 인생도 가치가 큼을 알게 됐다.  


그래서 제갈량도 중요하나, 손건 미축도 필요하다. 이들의 삶은 그저 그만그만해서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질 때도 설명도 없다.     


나는 주어진 삶이나 사회의 역할이 남이 알아주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고 초지일관하며 사라질 때도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인생을 닮고 싶다.    


 

대중화된 소설의 인물이 왜 설화로 탄생하였을까?     


설화층은 지혜로 똘똘 뭉친 제갈량도 천박하게 부인을 외모로 판단하고 홀대하였으나 다행히 잘못을 깨닫고 제대로 알아보고 배움으로써 뛰어난 인물이 됐다고 여기고 있다.     


왕조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로 하층민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나 나아질 방법도 없었다. 이를 타개하고 싶어서 소설로 대중화된 인물인 제갈량을 결혼을 통해 신분사다리 탄 인물로 그렸을까?   

  

위의 설화는 승주지역의 이야기이며 이외에 인천의 경우 유선(유비의 아들)이 못나 나라 안팎의 모든 일을 다 한다는 역할로, 태백에는 남만(중국 남부 운남지역)을 정벌할 때 화공으로 죽은 병사들을 보고 제명대로 살지 못할 것임을 탄식하는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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