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상응하는 벌을 가하려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으며 폭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 간의 복수는 주로 감정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어 효과가 제한적이며 당사자의 감정 관리능력에 따라 승화된 결과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집단 간의 복수는 집단의 이익이나 명예 회복을 위해 벌어지며 큰 규모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풀리지 않는 갈등이나 전쟁을 불러오기도 한다. 또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로 진행이 되어 일단 개시된 복수는 개개인의 능력으로 관리하기 어려우며 국가나 집단에 파국을 초래하기도 한다.
개인 간의 복수의 예는 오자서와 사마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오자서는 기원전 5세기의 오나라의 정치가이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죽인 초나라 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거쳐 목적을 달성하였으나 동료들의 시기로 화를 입어 죽게 된다.
사마천은 기원전 1세기 한나라의 역사가로 황제와 동료들이 전쟁의 책임 소재를 죄 없는 사람에게 전가하는 행태의 불공정함을 지적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의 미움을 얻어 사형에 처 해진다. 사마천은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죽음보다도 더 큰 치욕인 환관 되기를 자청하여 연장된 목숨으로 사기를 완성한다.
그는 복수의 마음을 차원 높게 닦아 역사서에 기록함으로써 그에게 치욕을 안긴 인간들을 역사의 심판 무대로 올려 영원히 기억하게 하였다. 그는 복수를 정신적으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류 발전에 지대한 공헌도 하게 된다. 오자서의 복수는 직접적으로 남의 무력을 빌려 실행한 일차적 복수였다면 사마천의 복수는 지식을 이용한 문화적인 복수이었다.
우리의 경우 삼국시대 진흥왕의 배신을 80여 년이 지난 후 의자왕의 장군 윤충이 무력으로 김춘추의 사위에게 복수를 하였으나 결국은 백제의 파국을 초래하였고 신라에게는 중국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게임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처음 지명이 생길 때는 지역의 자연 특징이나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이름 짓는다. 그 지명이 개명될 때는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요구에 따라 바뀌게 되는데, 그 지역을 관할하는 국가의 정치권력자나 사회지도층이 그들의 권위를 지역에 심기 위해 추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어떤 지역에 대해 정치권력이 그의 존재감을 나타낼 때 군사력으로 강제하면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으나 군사력이 사라지면 바로 이전 단계로 복귀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치권력자는 존재감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문화 권력을 활용하여 지명 개명을 실행한다.
이때 문화 권력의 씨앗이 그 지역에 꽃 피고 열매를 맺으려면 뿌리가 잘 내려야 한다. 나무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이 뿌리가 땅을 붙잡는 힘을 이용하여 꽃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래서 개명된 지명이 지역에 뿌리를 잘 내려 지역 공동체와 한 몸이 되면 사람들의 사용이 자연스러워지고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삶들이 꽃피고 열매를 맺도록 지원하는 뿌리 역할을 하게 된다.
한반도의 지역에 처음 붙여진 지명은 우리가 우리말로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식으로 지어 사용됐을 것이다. 그런 지명과 한 몸이 되어 사는 삶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의 관계가 엮이고 꼬이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배신과 복수를 초래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공동체 간에 사활을 걸고 일어나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 중국대륙의 정치세력을 이용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중국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가 되었다. 중국과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지명에 대한 중국인들의 경험과 방식을 도입하여 우리 고유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풀어보겠다.